“우리는 좌석을 팝니다, 창문이 아니고요.”
최근 창문 없는 좌석에 배정된 승객이 불만을 표하자, 아일랜드의 초저비용 항공사(ULCC·Ultra Low Cost Carrier) 라이언에어(Ryanair)가 공식 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남긴 답변이다. 그런데 고객에게 사과나 해명하는 다른 항공사들과 달리 뻔뻔하게 대꾸하는 라이언에어의 태도에 분노만큼이나 열광하는 반응도 많다.
이처럼 라이언에어는 공식 X와 틱톡 계정을 통해 자신들의 단점인 좁은 좌석, 부족한 서비스, 까다로운 수하물 규정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유머의 소재로 삼고 있다. 때로는 무례함과 뻔뻔함 사이를 넘나드는 표현으로 “돈 낸 만큼만 대우하겠다”는 회사의 철학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최근 한 승객이 좁은 레그룸(다리 공간) 사진을 올리며 불평하자, 라이언에어는 “(당신이 입은) 청바지는 2007년에 머물러 있다”며 승객의 패션을 조롱했다. 비즈니스 클래스와 같은 편안함을 기대하는 듯한 게시물에는 “피자 한 판보다 (항공 운임료가) 싼 비행기에 뭘 기대하느냐”며 일침을 가했다. 발이 큰 승객에게는 “발 사이즈가 크면 추가 요금을 받겠다”는 농담을 던진다. AI로 만든 이미지에 ‘라이언에어의 미래’라는 문장을 달아 서서 가는 승객들을 묘사한 게시물이 올라오자, 라이언에어는 “우리는 절대 헤드폰을 공짜로 주지 않는다”며 한술 더 뜨기도 했다.
◇유럽 하늘의 제왕
라이언에어의 이 같은 자조적 유머가 섞인 뻔뻔한 대응은 사실 치밀하게 계산된 마케팅 전략으로, 코로나 팬데믹 무렵부터 시작됐다. 라이언에어의 전 소셜미디어 책임자인 마이클 코코란은 BBC에 “(소셜미디어 전략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저비용 여행에 대한 승객의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라고 했다. 기대치를 바닥까지 낮춰 놓음으로써, 가격이 저렴하다는 강점에 집중하게 만들고, 비행기가 제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해도 승객들이 만족하게 만드는 심리전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또한 젊은 고객층에는 이런 뻔뻔함이 ‘쿨하게’ 인식되면서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입소문을 통해 화제가 되는 방식)을 통해 라이언에어가 앉은 자리에서 홍보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라이언에어는 이 같은 마케팅을 통해 ‘고객은 왕’이라는 서비스업계 불문율을 깨부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2022년 승객 수 1억6050만명을 기록해 코로나 이전 기록을 넘어섰다. 이에 전 세계에서 팬데믹 이후 가장 빠르게 흑자로 전환한 항공사 중 하나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승객 수가 1억9710만명으로 늘었고 유럽 내 승객 수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올해는 2억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악명 높은 비용 절감
미국 스피릿항공, 동남아의 에어아시아 등과 같은 ULCC 마케팅 전략의 핵심은 일반적인 저비용 항공사(LCC)보다도 극도의 비용 절감과 수익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티켓 값은 오직 ‘이동’에만 지불하는 비용이며, 그 외의 편의는 철저히 수익화한다. 미국 프론티어 항공은 승무원의 급여 인상 압박을 전가하기 위해 기내 서비스 이용 시 승객에게 팁을 내도록 유도하고 콜센터도 없앴다. 스피릿항공은 기내에 최대한 많은 좌석을 집어넣기 위해 좌석 등받이 조절 기능을 제거했다.
라이언에어의 경우 종이 탑승권 수수료로 55유로(약 9만4000원)를 지불하게 하고, 비행기 출발 40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하지 못하는 승객에게는 최대 117유로의 벌금을 부과한다. 대형 공항보다는 착륙 수수료가 저렴한 제2 공항 위주로 취항하고, 기내 반입 수하물 규격을 엄격히 제한해 초과할 경우 매우 높은 요금을 부과한다. 기내 엔터테인먼트, 잡지, 창문 블라인드, 좌석 주머니 등도 제거해 작은 비용조차도 줄이고 있다.
전략의 중심에는 1994년부터 회사를 이끌어온 최고경영자(CEO) 마이클 오리어리가 있다. 그는 신념과 비용 절감에 대한 집착으로 온갖 서비스에 대한 수익화를 연구해왔다. 안전 문제 등으로 실행되진 않았으나, 과거 기내 화장실 사용료를 받겠다는 것이나 입석 좌석 도입 등 논란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티켓 가격 인하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했다.
“나쁜 평판도 홍보에 좋다”는 철학으로 승객을 ‘화물’ 취급하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고, “우리는 고객의 눈물 젖은 사연 따위엔 관심 없다. 환불을 원하면 꺼져라”라고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과거 각종 발언 논란으로 막대한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도 부정적 방향으로 라이언에어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는데, 이런 철학이 소셜미디어 시대와 Z세대를 만나 뜻밖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셜미디어 컨설턴트 케리 피츠제럴드는 “오리어리의 독선적이고 과격한 사업 방식이 마케팅 부서에 침투하고 있다”고 말했고, 워싱턴포스트는 이 같은 과격함이 Z세대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