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미K2

지난 몇 년 동안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을 지배한 건 ‘AI 성능은 곧 칩 투자’라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공식이었다. 이 공식은 엔비디아의 초고가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정당화하는 근거였고, 미국 빅테크들은 경쟁적으로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해 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 잇달아 등장하고 있는 저비용·고효율 AI 모델은 이 공식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최근 공개된 문샷AI의 추론 모델인 ‘키미 K2 싱킹’은 오픈AI의 유료 GPT 모델에 근접하거나 이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이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올 초 딥시크가 촉발한 저비용 고성능 파동의 연장선으로, 중국 AI 산업이 더 이상 후발 주자가 아니라 세계 산업 구조를 뒤흔드는 새로운 축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이 전략은 중국 기업들이 이미 다른 산업에서 입증한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중국 드론 기업 DJI와 전기차 기업 BYD는 미국이 먼저 개척한 시장을 기술 효율과 원가 혁신으로 빠르게 추격하며 산업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두 가지 중국식 전략이 숨어있다. 첫째는 정부 주도의 원가 절감 구조다. 중국은 국산 AI 칩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에 대해 전력 비용을 낮추는 정책적 유인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 AI 칩의 전력 효율이 엔비디아 대비 다소 낮더라도 보조금이 이를 상쇄하면서 경쟁력 있는 원가를 확보할 수 있다. 둘째는 데이터 확보 환경이다. 중국의 느슨한 규제 기준은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고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모델 훈련 비용을 크게 낮춰 중국 AI 기업들이 적은 비용으로 더 빠르게 고도화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중국 AI 기업들은 미국 빅테크가 이미 개척해 놓은 알고리즘과 체계를 활용해 최적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적은 하드웨어로도 경쟁력 있는 성능 구현이 가능하다.

중국발 AI 원가 전쟁은 미국 경제 시스템에도 예상치 못한 부담을 안기고 있다. 중국의 저비용 모델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미국 빅테크의 GPU·데이터센터 투자가 미래 수익을 담보하지 못하는 과잉 인프라로 전락할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막대한 투자가 수익성을 잃을 경우, AI 인프라는 한순간 부채 부담으로 변하며 기업 재무 구조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속도전은 미국의 거시 경제 정책에도 압박을 가한다. 중국과의 AI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물가 안정을 위해 경기 둔화를 감수하는 전통적 선택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 부채와 인플레이션을 더 키우는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중국의 AI 원가 전쟁은 기업 간 기술 경쟁을 넘어 글로벌 경제 구도에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산업화 정책이 AI 분야에서도 추격의 역사를 되풀이할지, 또는 미국이 패권 방어에 성공할지가 앞으로 첨단 산업 질서를 가를 분기점이 될 것이다.

최성진 한양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