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불변’의 가치로 여겨지며 보석 가운데서도 최고가를 자랑하던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무너지고 있다. 최근 3년 새 금값이 2배 넘게 오른 것과 달리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은 같은 기간 거의 반 토막 났다. 27일 국제다이아몬드거래소(IDEX)에 따르면 이날 다이아몬드 가격 지수는 86.08까지 떨어졌다. 이 지수는 다이아몬드 국제 가격을 지수화한 것인데, 2001년 2월 가격을 기준(100)으로 삼는다. 최근 5년 최고점이었던 2022년 3월 158.39에서 45% 이상 빠진 수준이다.
◇랩 다이아의 부상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 급락의 핵심 배경으로는 실험실에서 만든 인공 다이아몬드의 부상이 거론된다. ‘랩 다이아몬드’ ‘랩 그로운(Lab Grown)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이 제품은 말 그대로 실험실에서 키운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랩 다이아몬드는 가짜 다이아몬드는 아니다. 천연 다이아몬드와 동일한 성분, 결정 구조, 경도, 광학적 특성을 지닌다. 천연 다이아몬드가 지표 120∼200㎞ 아래에서 수백만~수억 년에 걸쳐 고압·고온을 견디면서 생성되는 반면, 랩 다이아몬드는 그 과정을 실험실에서 재현해 단 2~6주 만에 만들어낼 뿐이다. 작은 다이아몬드를 고온·고압실에 넣거나, 진공 용기에 메탄이나 수소 가스를 주입해 크기를 키우는 방식으로 만든다. 미 경제 매체 포브스는 “제네릭(복제약)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성분과 효과는 같은데 가격만 차이가 나는 것처럼 랩 다이아몬드와 천연 다이아몬드는 화학적·시각적으로 동일하다”고 했다.
10년 전만 해도 랩 다이아몬드는 천연 다이아몬드보다 10% 정도 저렴했지만, 기술 발전과 생산량 증가로 현재는 천연 다이아몬드의 10~20%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러한 가격 하락은 랩 다이아몬드의 시장 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다이아몬드 전문 애널리스트 폴 짐니스키에 따르면, 전체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랩 다이아몬드는 2015년 1%만을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약 20%로 증가했다.
◇가성비 중시하는 젊은 소비자들
랩 다이아몬드의 폭발적 성장은 젊은 소비층을 중심으로 가성비를 중시하게 된 분위기와 맞물렸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보고서를 통해 “랩 다이아몬드의 엄청난 성공이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을 채굴 업계 예상치보다 크게 끌어내렸다”며, 그 배경으로 “더 저렴한 선택지를 원하는 소비자들”을 지목했다. 스테파니 바인더 보스턴다이아몬드컴퍼니 최고경영자(CEO)는 미 CBS에 “MZ세대가 우리 회사의 가장 큰 랩 다이아몬드 고객”이라며 “그들은 예산을 초과하지 않고도 꿈에 그리던 반지를 디자인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유명 인사들도 이 흐름을 뒷받침했다. 영국 해리 왕자의 아내 메건 마클과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영화배우 에마 왓슨 등 수많은 ‘셀럽(유명 인사)’이 랩 다이아몬드가 들어간 제품을 수시로 착용하면서 천연 다이아몬드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도 랩 다이아몬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프랑스 명품 그룹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의 주얼리 계열사인 프레드는 2023년 랩 다이아몬드 컬렉션을 내놨고, 명품 패션 브랜드 프라다도 랩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컬렉션을 론칭하기도 했다.
변화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결혼한 신혼부부 1만7000쌍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미국 웨딩업체 ‘더 노트(The Knot)’의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 대상 신혼부부가 주고받은 약혼반지에 랩 다이아몬드가 들어갔다고 답한 비율이 52%로 사상 처음 절반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조사 대비 6%, 2019년 대비 40% 늘어난 수치다. 랩 다이아몬드 인기 상승으로 예비부부의 약혼반지 평균 구매 가격은 2021년 6000달러에서 지난해 5200달러로 감소했다.
천연 다이아몬드 채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환경적 문제와 위험성 등도 젊은 소비자들이 랩 다이아몬드를 택하는 한 이유다. 로런 케이 더 노트 편집장은 포천에 “랩 다이아몬드 인기는 인권·환경 논란을 피하는 윤리적 생산 관행에 대한 인식에도 있다”며 “예산 때문에 보석 크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훌륭하고 현실적인 선택지”라고 말했다.
◇랩 다이아에 기업·국가도 휘청
랩 다이아몬드 인기와 그로 인한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 하락에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슬로건을 만든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회사인 영국 드비어스는 130여 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3%나 줄었고 재고 물량만 20억달러어치가 쌓이며 매각 위기에까지 놓였다.
드비어스의 주요 파트너이자 천연 다이아몬드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는 역성장에 빠졌다.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 부진으로 관련 산업 수입이 반 토막 나면서 보츠와나 경제는 지난해 3% 후퇴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보츠와나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은 0.8% 감소할 전망이다. 보츠와나는 국토의 상당 부분이 사막이지만 다이아몬드 채굴 산업 덕분에 번영해 교육, 무료 보건 등으로 아프리카의 상위 소득 7국 가운데 하나가 됐다. 하지만 재정 수입의 약 30%, 외환 수입의 75%를 차지하는 다이아몬드 관련 산업이 위기를 맞자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