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보면 ‘3’이라는 숫자가 유난히 자주 눈에 띈다. 3대 기업 집단은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를 의미하고, 3대 편의점은 세븐일레븐·패밀리마트·로손을 가리킨다. 3대 온천, 3대 정원처럼 ‘셋씩 묶어 부르는’ 이름이 넘쳐난다. 소고기도 마찬가지다. 고베규(牛)·마쓰자카규·오미규를 일본 3대 와규로 꼽는다.
교토의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종류의 일식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소고기가 등장하자 당연히 3대 소고기 중 하나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셰프는 ‘히라이규’라고 소개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은 음식을 위해선 좋은 재료가 필수다. 그런데 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소고기를 재료로 사용할까.
알고 보니 히라이는 지명이 아니라 인명이었다. 히라이 집안은 1868년부터 교토에서 목장을 운영해 왔는데, 지금의 대표는 5대손이다. 히라이규가 명성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물이다. 지하 150m에서 길어 올린 천연수를 소에게 먹인다. 둘째는 도축 시기다. 일본에선 일반적으로 소는 28개월이 넘으면 체중 증가량 대비 사료값의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생후 2년 4개월쯤 도축한다. 하지만 히라이규는 평균 35개월까지 기른다. 비록 사료값은 더 들지만, 30개월이 넘어가면서 더 고급스러운 육질이 형성된다고 한다. 이러한 원칙과 5대째 내려오는 사육 노하우가 결합해 ‘미쉐린 스타 셰프가 찾는 소고기’ ‘육보(肉寶)’라는 별칭을 얻었다.
교토에 히라이규가 있다면 도쿄에는 오자키규가 있다. 오자키 무네하루라는 사람이 30년 이상 연구한 사료를 먹이면서 기른 소다. 오자키규가 도쿄에서 명성을 얻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2000년대 중반 일본 부자 랭킹 40위까지 올랐던 IT 기업가 호리에 다카후미는 셰프이자 와규 전문가인 하마다 히사토와 함께 2016년 ‘와규 마피아’라는 와규 회원제 레스토랑을 열었다. ‘일본 최상 1%급 고베규’를 표방했고, 심지어 2만엔(약 19만원)짜리 ‘고베규 샤토브리앙(안심의 특정 부분) 가쓰 산도’를 내놓았다. 가쓰 산도는 빵 사이에 고기(보통 돈가스)를 끼워 만든 일본식 샌드위치인데, 편의점에서는 500엔 정도에 살 수 있다. 아무리 소의 귀한 부위라고 하지만 2만엔은 너무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10분 만에 완판됐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화젯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와규 마피아라는 레스토랑이 자리를 잡자, 메뉴를 고베규에서 고베규·오자키규로 확장했다. 하마다는 와규에 본격 입문하기 전에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활동했었다. 그가 오자키 목장을 방문해 고급 와규 1㎏을 6시간에 걸쳐 먹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 날 아침, 몸이 전혀 무겁지 않았다. 너무 가뿐한 느낌이었다. 하마다는 곧바로 오자키에게 전화를 걸었고, 오자키로부터 “그게 진짜 소고기야”라는 답을 들었다. 이 전화 통화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고, 오늘날 와규 마피아로 이어졌다. 처음부터 오자키규를 내세우기엔 브랜드 인지도가 약하다고 판단한 하마다는 일단 고베규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와규 마피아를 세상에 알린 후 여기에 오자키규를 얹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판단은 적중했고, 오늘날 긴자의 유명 야키니쿠집들 가운데서도 오자키규를 전면에 내세우는 곳이 등장했다.
우리에게도 횡성한우를 비롯해 이름난 한우 브랜드가 있다. 히라이규나 오자키규처럼 축산업에 종사하는 장인의 이름을 내건 소고기가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역 브랜드에서 개인 브랜드로 넘어가는 큰 흐름을 타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모든 산업에 적용된다. 예전에는 회사의 간판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개인의 실력과 이름값이 더 중요하다.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 장인, 마스터급 인재가 되는 길만이 인공지능(AI)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