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원유 공급 과잉으로 국제 유가가 연초 최고점 대비 25%가량 빠진 가운데, 미국의 양대 석유 기업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지난달 31일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양 사 모두 매출과 순이익 등 주요 실적 수치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엑손모빌은 올해 3분기 매출 853억달러(약 125조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3% 감소한 수치다. 순이익은 75억달러로 12.3% 감소했다. 셰브론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한 497억달러를, 순이익은 21.1% 줄어든 35억달러를 기록했다.
이 같은 수익성 악화는 글로벌 경기 둔화로 화학 부문에서 이익이 줄어들고 기업 인수 등으로 인한 대규모 비용이 발생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저(低)유가로 인한 마진 축소의 영향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분기 양 사는 역대 최고 수준의 생산량을 기록했다. 마진이 줄었는데 생산량이 늘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WEEKLY BIZ는 실적 발표 자료와 콘퍼런스콜 등을 종합해 저(低)유가라는 어려운 환경에 놓인 양 사의 3분기 생산과 대응 방안을 살펴봤다.
◇원유 생산은 기록적
엑손모빌은 3분기에 전 세계에서 하루 평균 477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가량 증가한 양이자 엑손과 모빌의 합병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 같은 기록적 생산은 미국 최대 유전 지역인 퍼미안 분지와 남미 가이아나에서 물량이 증가한 데 힘입었다. 가이아나 해상 유전에선 하루 70만배럴, 퍼미안 분지에선 170만배럴 가까이 생산하며 모두 신기록을 세웠다. 특히 가이아나의 네 번째 구역인 옐로테일(Yellowtail) 개발을 예정보다 4개월 앞당겨 3분기에 시작한 것이 기록적 생산량에 영향을 미쳤다.
엑손모빌의 대런 우즈 최고경영자(CEO)는 “유가 변동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을 늘리는 투자를 지속하는 것은 장기적인 전략이며, 이는 회사가 상품 주기 전반에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도록 설계한 계획”이라고 말했다.
셰브론도 3분기에 하루 410만배럴을 생산하며 역대 최대 생산량을 기록했다. 엑손모빌과 마찬가지로 퍼미안과 가이아나에서 생산 물량이 는 데 더해 석유 기업 ‘헤스(Hess)’를 인수하면서 생산량이 하루 50만배럴 가까이 급증했다. 미국 내 생산량은 하루 200만배럴로 27% 늘었고, 해외 부문도 16% 증가해 하루 200만배럴을 기록했다. 셰브론 측은 “기록적 생산량은 단순한 물량 증대가 아니다. 헤스 인수 통합과 운영 효율성 개선을 통해 저유가 상황에서도 회사의 현금 창출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전략이 성공했다는 걸 이번에 입증했다”고 자평했다.
◇공격적 투자 이어가는 엑손모빌
엑손모빌과 셰브론은 유가 하락이라는 같은 시장 환경 속에서 극명히 다른 전략적 기조를 보였다. 우선 엑손모빌은 단기적인 가격 변동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인 성장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우즈 CEO는 “유가가 비슷한 다른 분기와 비교했을 때 이번 분기에 가장 높은 주당순이익을 달성했다”며 “배럴당 35달러까지 떨어져도 두 자릿수 수익률을 낼 수 있는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엑손모빌의 3분기 자본 지출(Capex)은 86억달러를 기록했는데, 지난해 3분기 대비 22억달러 증가한 수치다. 유가 선물이 4년 사이 최저 수준을 맴도는 상황에서도 대규모 증설 프로젝트를 계속 밀어붙이는 것이다. 다만 공격적 투자의 그늘도 있다는 지적이다. HSBC 애널리스트 킴 푸스티어는 “엑손모빌의 프로젝트 집행 성과에도 불구하고 순부채가 다시 증가했다”며 “이는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필요한 돈을 잉여현금흐름(FCF)만으로는 충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잉여현금흐름은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에서 자본 지출을 뺀 값으로, 기업이 배당·부채 상환·재투자 등에 자유롭게 투입할 수 있는 가용 현금을 뜻한다.
푸스티어는 “긍정적인 실적에도 불구하고, 순부채 증가가 분기 연속으로 이어진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의 유가(배럴당 65~70달러) 수준에서는 엑손모빌의 주주 환원이 현금 흐름만으로는 완전히 커버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엑슨모빌의 해당 분기 FCF는 63억달러였지만, 자사주 매입과 배당 합계는 94억달러에 달했다.
◇셰브론, 현금 창출에 방점
반면 셰브론은 유가 하락 국면에서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기존 자산에서 현금 창출을 극대화하는 전략에 초첨을 맞춘다. 셰브론은 마이크 워스 CEO 주도로 유가의 전형적인 호황·불황 사이클에 더 잘 견딜 수 있도록 회사를 현금 창출 위주로 재편하고 있다. 헤스 자산 편입 효과를 제외하더라도 셰브론은 올해 생산을 7% 늘리고, 2026년에는 추가로 5% 늘릴 계획이었다. 특히 카자흐스탄 텡기즈 유전과 멕시코만의 심해 프로젝트 등 고(高)마진을 내는 유전은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져도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셰브론은 퍼미안 분지와 덴버-줄스버그 분지 등 자본 집약적 셰일 지역에서는 생산 증가율을 조절하면서, 글로벌 인력을 20% 줄이고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체질 개선을 추진해 현금 흐름을 끌어올리고 있다. 에이머 본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예고했던 현금 흐름의 전환점이 3분기에 나타났다”며 “헤스 자산이 이미 실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공격적 투자’의 엑손모빌과 ‘현금 창출’의 셰브론 가운데 일단 셰브론 손을 들어줬다. 두 회사가 모두 주당순이익(EPS) 면에서 월가 예상을 웃도는 3분기 실적을 냈지만, 장중 셰브론 주가는 최대 3.5% 상승한 반면 엑슨모빌은 장중 최대 1.8% 하락했다.
◇증산 기류 바뀔까
엑손모빌과 셰브론이란 미국 양대 석유 업체가 실적을 발표한 지 이틀 뒤인 지난 2일 OPEC+ 소속 8국은 내년 1분기 추가 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8국 에너지 장관들은 이날 화상 회의를 열어 다음 달 원유 생산량을 하루 13만7000배럴 늘리고 내년 1~3월은 계절적 요인을 고려해 증산하지 않기로 했다. 12월 증산량은 10~11월과 같은 규모로 지난 8~9월 54만7000배럴에 비하면 소폭이다.
이들은 지난 4월부터 증산 기조로 전환해 하루 기준 220만 배럴의 ‘추가 자발적 감산’을 9월에 전량 해제했다. 이어 이날 화상 회의에서는 이와는 별도로 165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감산도 시장 여건에 따라 부분 또는 전부 복원(해제)할 수 있다는 유연성을 재확인했다. 이로 인해 유가 하락 흐름이 바뀌게 된다면, 엑손모빌과 셰브론의 핵심 사업인 탐사 및 생산 부문의 마진과 현금 흐름을 방어할 수 있어 수익이 늘어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對)러시아 제재로 러시아가 생산량을 더 늘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내년 원유 공급이 수요를 하루 최대 400만배럴 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전 세계 수요의 약 4%에 해당한다. OPEC+ 22회원국은 오는 30일 회의를 열고 내년 산유 쿼터 조정 여부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