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밀레이(오른쪽)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둔 지난달 14일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로이터 연합뉴스

살인적 인플레이션, 높은 빈곤율, 연이은 디폴트(국가 채무 불이행) 등 ‘경제 문제아’로 악명 높았던 아르헨티나의 자산 가치가 최근 일제히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이 지난달 26일 실시한 중간선거에서 예상 밖 압승을 거둔 뒤 나타난 현상이다.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밀레이의 개혁 기조가 중단 없이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진 데다, 미국 정부의 직·간접 지원과 통화 스와프 등 외환 안전판이 작동하자 정책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회복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식·채권 동반 폭등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 상장된 아르헨티나 기업들의 ADR(미국 예탁증서)은 선거가 실시된 지난달 26일 이후 2주 이상 업종을 가리지 않고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ADR은 미국 시장에서 발행하는 주식형 예탁 증서로, 일반 주식처럼 거래된다.

눈에 띄는 종목은 아르헨티나 최대 민간 은행인 갈리시아로, 지난달 24일 선거 직전부터 지난 7일까지 2주간 56.3% 상승했다. 같은 기간 국영 에너지 기업 YPF는 40.6%, 전력 회사 에데노르 70.9%, 텔레콤아르헨티나 67.9%, 농산물 기업 크레수드가 26.4% 상승했다. 2030년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는 17.1% 오르는 등 국채 가격도 상승세다.

◇예상 밖 승리와 미국의 지원

이처럼 아르헨티나 관련 자산 가치를 끌어올린 동력은 지난달 26일 치른 중간선거다. 선거에서 밀레이가 이끄는 자유전진당은 40.7%를 득표해 승리했다. 반면 야권 페론주의(1940~1950년대 좌파 지도자 후안 페론을 계승하는 대중 영합주의) 정당 연합은 24.3% 득표에 머물렀다. 자유전진당이 의회 절대 과반을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 입법안에 대한 야권의 부결 시도를 막고 거부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 저지선인 하원(257석)의 최소 3분의 1이라는 목표를 여유 있게 달성해 개혁 추진력을 얻게 됐다.

사실 선거 전까지만 해도 여당의 패배와 그로 인한 밀레이의 레임덕 우려까지 나왔다. 2023년 취임한 밀레이는 포퓰리즘을 단번에 잘라내겠다는 ‘전기톱 개혁’을 약속하며 재정 적자 ‘제로(0)’를 위한 정부 규모 감축, 전기·가스·교통 보조금 축소 등 공격적인 긴축 정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보조금 축소 등의 직격탄을 맞은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불만이 커졌고, 최근에는 밀레이 여동생의 부패 스캔들까지 불거졌다. 이에 중간선거의 전초전으로 여겨졌던 지난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주(州) 지방선거에서 페론주의 야당이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야당 승리 다음 날 아르헨티나 ADR과 국채 가격이 폭락했고, 국가 위험도는 급등했다.

밀레이를 위기에서 구해 낸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었다. 내정 간섭 논란까지 나왔지만 선거 전 미국 재무부가 이례적으로 페소를 직접 매입하고 200억달러 규모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으며, 추가 200억달러 민간 자금 유치 계획까지 공개되면서 페소 환율과 채권 시장을 안정시킨 효과가 컸다. 이 같은 약속을 얻어내려고 밀레이는 중간선거 전후로 수차례 미국을 방문했다.

선거 이후에도 미국의 아르헨티나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암비토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정부는 미국과 철강·알루미늄 무관세 쿼터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양국은 통상 패키지 협상을 진행 중인 가운데 아르헨티나산 소고기에 미국 시장 우선 접근권을 부여하는 내용도 포함될 전망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은 한국 등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수입하는 철강·알루미늄에 관세 50%를 부과하고 있다.

◇‘전기톱 개혁’ 이어질까

여당 승리로 향후 밀레이표 개혁 추진력은 강화될 전망이다. 선거 이후 정부는 노동·세제·연금·민영화 의제를 ‘2단계 개혁 패키지’로 재정비해 밀어붙일 태세다. 구체적으로 노동 개혁 분야에선 해고 보상금 체계 조정이나 수습 기간 연장 등을 통해 고용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세제 개혁 분야에선 복잡한 세목을 폐지·통합해 단순화하고, 중소기업의 세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아울러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활성화하기 위해 세제 인센티브 확대와 규제 완화 등 투자 환경 개선책도 병행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