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뉴욕근대미술관(MoMA)에서는 ‘일본의 별자리: 이토 도요, 사나(SANAA) 그리고 그 너머’라는 현대 일본 건축을 둘러싼 흥미로운 전시가 열렸다. 전시 제목은 일본의 ‘별’이 아니라 ‘별자리’였다. 서로 다른 건축가들이 별자리처럼 서로 연결됐다는 의미다. 미국 예술계는 일본의 현대 건축가 중 누구와 누가 연결돼 있다고 본 것일까.
별자리의 중심에는 이토 도요가 있다.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971년부터 ‘이토 도요 건축설계사무소’를 이끌어 오고 있다. 2013년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그의 제자 세지마 가즈요는 1980년대 초 이토 사무실에서 일한 뒤 니시자와 류에와 함께 사나(SANAA·Sejima and Nishizawa and Associates)라는 팀을 결성했다. 이 팀 또한 2010년 프리츠커상을 받으며 세계 건축계의 별이 됐다. 1990년대에 이토 사무실에서 근무한 히라타 아키히사는 지난해 ‘하라카도’라 불리는 복합 건축물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고, 2000년대 초 세지마 사무소에서 근무한 이시가미 준야 또한 별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직접적인 사제 관계는 아니지만 후지모토 소우도 ‘이토와 세지마의 계승자’로 평가돼 별자리에 포함됐다. 후지모토는 2025년 엑스포의 핵심 상징물인 ‘그랜드 링’을 설계한 인물이다.
어디 이뿐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도쿄의 복합 문화 공간 ‘다이칸야마 티사이트(T-site)’를 설계한 클라인 다이섬 아키텍처의 영국 출신 건축 듀오 역시 한때 이토 사무실에서 일했다. 이 정도면 별들의 향연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한국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나 구마 겐고의 작품은 꽤 있기에 이 이름들은 익숙하다. 하지만 소위 ‘안도 사단’이나 ‘구마 패밀리’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반면 이토는 스스로와 그의 제자를 포함해 별자리라는 표현까지 얻었다. 어떤 점이 달랐을까.
그는 2011년 비영리 건축학교인 이토주쿠(伊東建築塾)를 설립했다. 영어 이름 ITO는 ‘내일의 건축 기회를 여는 모임(Initiative for Tomorrow’s Opportunities in architecture)’을 뜻한다. 이곳에서는 젊은 건축가를 길러내는 동시에 아이디어가 실제 설계까지 제대로 이어지도록 훈련시킨다. 지방자치단체 담당자와 함께 새로운 도시와 마을 만들기를 추진하는 프로젝트도 수행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 과정도 있다. 건축가라는 꿈을 어렸을 때부터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공교롭게도 이 학교가 세워질 즈음 동일본대지진 사태가 발생했다. 이토는 건축 재료를 최대한 현지에서 조달하고 단순한 구조로 설계한 커뮤니티 시설을 만드는 ‘모두의 집(Home-for-All)’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그가 이토주쿠 멤버와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높은 평가를 받았고, 201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보통 건축가 사무소는 도제 형식으로 운영된다. 이토주쿠는 이를 넘어 공공 교육·지역 재생·전시를 연결한 플랫폼이자 허브로 자리 잡았다. 뉴욕근대미술관에서 ‘별자리’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훌륭한 것도 중요하지만, 인재로 키우는 것은 더욱 소중하다. 파나소닉 창립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일찍이 정치인 사관학교로 통하는 ‘마쓰시타 정경숙’을 만들었다. 미래의 정치·경제 지도자를 양성하고, 그의 이념인 자유·행복·번영(PHP: Peace, Happiness, Prosperity)을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이번에 일본 총리로 임명된 다카이치 사나에가 이곳 출신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눈길을 끌었다. 우리도 ‘건명원’ ‘감이당’ 등 뛰어난 철학자·고전학자가 운영하는 모임이 있다. 인문학을 넘어 실용적인 분야까지 확대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