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인공지능(AI) 기술의 가치와 수요가 과대평가됐다는 ‘AI 거품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지난달 29~30일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메타, 알파벳(구글 모회사)이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이들 기업은 AI 거품 논란의 중심에 선 빅테크인 동시에 미국 주식 시장 랠리를 주도하는 ‘매그니피선트7(M7·대형 테크주 7개)’으로 분류되는 만큼 이번 실적과 경영진 발표가 시장의 큰 관심을 받았다.

지난달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글로벌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AI 거품은 인플레이션과 관세 등 무역 분쟁을 제치고 처음으로 ‘금융시장의 최대 잠재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이런 상황에서 WEEKLY BIZ는 네 기업의 실적 발표 자료와 콘퍼런스콜을 종합해, AI 거품론의 쟁점과 이에 대한 기업·시장 진단을 분석했다.

◇거품론에도 폭증하는 AI 투자

일각에서 AI 거품론을 제기하는 논거 중 하나는 AI 업체들이 ‘치킨게임’에 매몰돼 외형적 성장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빅테크들이 AI 투자에 대규모 자본 지출(Capex)을 지속하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수익을 내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이다. 자본 지출이란 한 회사가 생산 활동을 위해 토지나 건물, 장비 등을 취득하거나 개량하기 위해 지출하는 자금을 의미한다. 미 CNBC는 “기록적 지출이 거품을 조장한다는 회의론이 점점 늘고 있으며, AI에 대한 거창한 약속을 현실로 만들기에 충분한 에너지와 자원이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실적 발표 기간 빅테크들은 일제히 올해 자본 지출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네 업체의 올해 자본 지출 규모는 총 4000억달러(약 580조원)에 이르고, 내년엔 42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게 블룸버그 전망이다.

업체별로는 글로벌 1위 클라우드 업체인 아마존이 지난달 30일 실적 발표에서 올해 자본 지출 전망치를 기존 1180억달러에서 1250억달러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밝히며 가장 공격적 투자를 이어갔다. 아마존은 “내년에는 자본 지출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2위인 MS는 지난달 29일 실적 발표에서 지난 분기 자본 지출이 전 분기보다 45% 이상 늘어난 349억달러였다고 밝혔다. 데이터센터 기반 서비스에 대한 고객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향후 2년 안에 데이터센터 규모를 두 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MS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에이미 후드는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컴퓨팅 성능이 부족했다”며 “우리는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알파벳도 올해 자본 지출 규모를 910억~950억달러로 상향했다. 이는 올여름 자본 지출 전망치를 750억달러에서 850억달러로 올린 데 이은 두 번째 상향 조정이다. 아낫 애시케나지 알파벳 CFO는 “2026년에도 자본 지출이 상당 수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메타 역시 올해 자본 지출 전망치를 700억~720억달러로 제시해 기존 660억~720억달러에서 하단을 40억달러 높였다.

◇클라우드 여부에 엇갈린 평가

빅테크 4곳 모두 AI 투자를 늘리겠다고 공표한 것은 같았지만 시장의 평가는 엇갈렸다. 메타는 3분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3% 감소한 27억달러를 기록해 실적 발표 이후 주가가 11.3% 폭락했다. 네 업체 중 유일한 순이익 감소다.

게다가 메타의 막대한 투자 규모에 비해 AI에서 나오는 확실한 수익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다른 세 업체가 클라우드 사업을 하면서 자본 지출로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임대 수익을 올리는 것과 달리 메타의 데이터센터 투자는 오로지 자사 플랫폼 내에서 AI를 활용하기 위해 사용된다. 즉, 막대한 투자가 내부 효율 향상에만 쓰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AI는 신제품 개발과 광고·콘텐츠 추천 시스템 강화에 막대한 기회를 제공한다”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투자를 가속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AI를 활용한 더 나은 타기팅으로 디지털 광고 사업의 성과가 향상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펜하이머의 애널리스트들이 주식 투자 등급을 ‘매수’에서 ‘유지’로 낮추는 등 시장의 박한 평가가 이어졌다.

반면 클라우드 사업을 하는 아마존, MS, 알파벳은 자본 지출을 통해 구축한 데이터센터로 임대 수익을 올리는 등 수익화를 실현하며 AI 거품론을 일시적으로 잠재운 모양새다. 아마존은 3분기 아마존웹서비스(AWS) 매출이 20% 증가한 33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MS는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 매출이 40% 증가했다고 밝혔고, 구글의 클라우드 매출은 34% 증가한 151억5000만달러로 나타났다.

◇순환 거래 논란

AI 거품론을 둘러싼 또 하나의 우려는 AI 기업 간 ‘순환 거래(circular deals)’ 구조다. 최근 모건스탠리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오픈AI·엔비디아·MS·오러클·AMD·코어위브 등 6개 산업 핵심 기업들이 서로 지분 투자를 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등 순환 투자 구조로 얽혀 있다. 구글이 30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AI 스타트업 앤스로픽도 지난달 구글과 클라우드 이용 확대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구글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은 앤스로픽이 다시 막대한 돈을 주고 구글의 칩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AI 생태계에서 수요와 매출이 자체적으로 창출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착시를 일으킨다. 이런 순환 거래 구조에 대해 2000년대 발생한 닷컴버블의 재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닷컴버블 당시 신생 기술 기업들이 서로의 배너 광고를 클릭하며 매출을 인위적으로 부풀렸던 행태와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스타트업 투자도 변수

이처럼 얽히고설킨 투자 구조 속에서 지난 분기 빅테크 실적에는 각 회사가 투자한 AI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와 실적도 변수로 작용했다. 알파벳과 아마존이 투자한 앤스로픽의 기업 가치가 높아지면서 두 회사의 실적도 좋아졌다. 앤스로픽은 지난 9월 13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며 6개월 전보다 기업 가치가 약 세 배로 늘었다. 14%가량의 앤스로픽 지분을 들고 있는 알파벳의 3분기 지분 증권 순이익은 107억달러였고, 앤스로픽에 약 80억달러를 투자해 지분을 보유한 아마존의 3분기 실적에도 앤스로픽의 가치 상승으로 인한 순이익 95억달러가 포함됐다.

반면 MS는 이번 분기 오픈AI의 손실로 인해 이익이 약 31억달러 감소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순이익이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실적 발표 후 주가도 2.9% 하락했다. AI 인프라에 대한 과도한 투자 대비 오픈AI 수익에 대한 불안감이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순환 거래로 인한 AI 거품론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러한 거래 구조가 꼭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전환기 기술인 AI에서 오픈AI 등은 거대한 주체고, 주요 기업이 인프라를 신속히 구축하는 경쟁을 벌이는 것”이라면서 “오픈AI와 경쟁사들이 막대한 자본 지출을 정당화할 만큼 강력한 현금 흐름을 창출한다면 그들의 노력은 엄청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