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서점을 방문하려면 대형 복합 시설로 가면 된다. 긴자식스에는 ‘쓰타야 서점’, 도쿄역의 오아조에는 ‘마루젠 서점’, 아자부다이 힐스에는 ‘오가키 서점’, 다카나와 게이트웨이 시티에는 ‘분키쓰’가 있기 때문이다. 대형 복합 시설로선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것이 관건인데, 그 점에서 책방만큼 좋은 공간이 없으니 모두 서점을 입점시켰다.
쓰타야 서점은 일본 트렌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이다. 15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마루젠 서점, 1942년 창업한 교토의 대표 서점 오가키 서점도 일본인이라면 익숙하다. 하지만 분키쓰는 일본 사람에게도 다소 낯선 이름이다.
‘문화를 만끽하다’라는 뜻의 분키쓰(文喫)는 2018년 롯폰기역 앞에 첫 지점을 낸 ‘입장료를 받는 서점’이다. 입장료를 받는다고? 그렇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잡지 진열대가 보이는데, 이 공간은 무료다. 그러나 한 단계 안쪽 서가로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롯폰기점 하루 이용료는 처음엔 평일 기준 1650엔(약 1만6000원)을 받다가 현재는 2750엔까지 올랐다. 입장료를 내면 어떤 혜택을 받을까. 330㎡ 남짓한 공간에 90개의 의자와 소파가 마련돼 있고, 그 안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다. 책이 약 3만권 비치돼 있는데, 각 서적은 1종당 1권씩만 갖추고 있다.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고, 커피와 음료는 무료다. 서가의 연극 코너에선 극단 배우가, 건축 코너에서는 건축학과 학생이 책 선정을 돕는다.
일반 서점의 주요 매출 항목은 ‘책’뿐이다. 이익을 내려면 판매 권수를 올려야 한다. 그러나 분키쓰는 책 외에도 ‘입장료’라는 수익원이 있다. 커피와 음료는 무료지만, 가벼운 식사는 돈을 받아 ‘식사 판매’ 수입도 생긴다. 게다가 책의 단가부터 높다. 한 권에 30만원에 이르는 미술 서적도 이곳에서는 곧잘 팔린다.
분키쓰는 서점의 업(業)을 ‘공간업’으로 정의했다. 즉, 책이 아니라 ‘공간’을 판다는 개념이다. 분키쓰는 롯폰기 대로변에 있어 임차료가 비싸지만, 책이 팔리지 않아도 수익이 나는 서점을 만들려는 고민 끝에 ‘입장료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을 탄생시킨 것이다.
다카나와 게이트웨이 시티는 분키쓰의 이런 발상을 높이 평가했다. 분키쓰와 함께 남관 5층, 3300㎡의 공간을 꾸몄다. 책 10만권, 223석의 라운지, 카페와 이벤트 공간, 업무 공간 기능까지 갖춰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 아닌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하루 이용료는 3850엔이지만, 60분 이용은 1100엔, 이후 30분 단위로 550엔을 받는다. 분키쓰 지점과 달리 다카나와 게이트웨이 시티 지점엔 이벤트 공간이나 업무 공간까지 추가돼 단기 체험을 원하는 고객층을 고려해 매긴 가격이다.
서점에서 입장료를 받겠다는 발상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2003년 롯폰기힐스가 문을 열었을 때, ‘쓰타야 도쿄 롯폰기(현 롯폰기 쓰타야 서점)’는 일본 스타벅스와 제휴해 북카페 형태의 공간을 만들었다. ‘서가에서 책을 뽑아 서서 읽는 건 무료지만, 의자에 앉아 읽으려면 커피를 한 잔 주문해야 한다’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고객들은 커피를 주문하려고 긴 줄을 섰고, 커피 판매 수익은 스타벅스와 쓰타야가 나눴다.
그런데 이 모델엔 한계가 있었다. 고객이 커피 한 잔을 시키면 30분을 있든 3시간을 있건 수익이 같다. 그렇다면 시간 단위 개념을 도입하면 어떨까. 쓰타야 서점은 2019년, 점포 내에 ‘셰어 라운지(Share Lounge)’를 만들어 시간 단위로 공간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아예 책이 없는 ‘셰어 라운지’만 운영하는 매장도 등장했다. 그만큼 수익성이 높다는 뜻이다.
술집인데 술을 팔지 않아도, 옷 가게인데 옷을 팔지 않아도 수익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간업 재정의는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