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집에서 학교까지 지하철로 왕복하니 하루 교통비는 3100원입니다. 아침과 저녁은 집에서 해결하고 점심은 4000원짜리 학식으로 때웁니다. 커피도 집에서 직접 타서 텀블러에 담아가죠.”

대학생 양지숙(22)씨는 지난 3일 하루 동안 쓴 돈이 7100원뿐이라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서울 집값을 생각하면 젊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가능한 한 생활비를 아낀다고 했다. 대학생 강민찬(23)씨의 유일한 ‘과소비’는 단백질 드링크뿐이다. “끼니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해결하니 하루 지출이 제로(0)인 날도 많아요. 그러다가 가끔 편의점에서 한 번 사 먹는 ‘2+1′에 5800원짜리 단백질 음료가 유일한 소비예요.”

청년 세대 사이에서 신(新)자린고비 생활을 뜻하는, 이른바 ‘저소비 생활’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일본 유튜버 가제노타미가 월세 포함 한 달 생활비 7만엔(약 66만원)으로 살아본 경험을 담은 책 ‘저소비 생활’의 한국어 번역본이 최근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틱톡에선 ‘#Underconsumption core’란 해시태그가 달린 관련 영상들의 총 조회 수가 6000만회를 넘겼다. 저소비 생활이란 가진 물건이 닳을 때까지 사용하거나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는 소비 문화를 뜻한다. WEEKLY BIZ는 저소비 생활이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풍조로 떠오른 배경과 실태를 들여다봤다.

◇韓 2030, 70%가 ‘저소비 생활’

한국에서도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저소비 생활은 이미 일상이 됐다. WEEKLY BIZ가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를 통해 지난달 20~30대 604명을 대상으로 ‘최근 6개월 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68.8%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저소비 생활을 실천하고 있는 이유로는 ‘물가 상승과 저축 등 경제적 요인’이 57.4%로 가장 많았고, ‘미니멀한 삶의 가치 추구’(24.8%), ‘환경 보호 및 지속 가능성’(16.5%) 등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왜 청년층은 스스로 자린고비의 삶을 살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청년 세대가 낮은 취업률과 경제성장률, 고물가 시대에서 나름의 생존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장기간 이어진 불안한 경제 환경 속에서 더는 가정이나 국가의 지원에 기대기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며 “결국 스스로를 책임지는 소비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데다 물가 상승까지 겹치자, 청년들은 생존을 위해 소비를 최대한 줄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설문에서 청년들은 소비 습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경제적 여건’(45%)을 첫손에 꼽았다. 반면에 ‘소셜미디어 트렌드’는 7.6%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세계 곳곳에도 ‘MZ 자린고비’

“500달러짜리 유아용 요람이 탐났지만, 몇 달밖에 쓰지 못할 물건에 그 많은 돈을 들일 순 없었어요.” 미국 미시간에서 지난 6월 아이를 출산한 30대 여성 사브리나 파레씨는 자신의 틱톡 계정에 이 같은 글을 남겼다. 그는 새 아기 요람을 구하는 대신 온라인 벼룩시장인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를 뒤져 새 제품의 10분의 1 가격인 50달러에 상태 좋은 중고 제품을 구했다. 평소에도 파레씨는 중고 거래로 얻은 물건을 직접 촬영해 자신의 틱톡 계정에 공유하곤 한다. 그는 “소박한 삶에 만족해도 괜찮다. 매일 쇼핑몰에 들르거나 하루 한 벌씩 새 옷을 사는 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소비”라고 했다.

이처럼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저소비 생활’이 젊은 세대의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저소비 생활이 글로벌 흐름으로 확산된 배경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폭발한 ‘보복 소비’에 대한 피로감을 지목했다. 보통 사회·경제적 악재(惡材)가 발생하면 가계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저축률이 높아진다. 이후 경제가 안정되면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소비를 크게 늘리는 보복 소비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씀씀이가 커져 가계 저축이 줄어들면서 다시 지갑을 닫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미 경제분석국(BEA)이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 1월 4.1%였던 개인 저축률은 4월 4.9%까지 상승했다.

◇‘나답게 사는 소비’로 진화

저소비 생활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차원을 넘어 ‘나답게 사는 소비’를 지향하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발전 중이다.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의 메건 도허티 비아 소비자과학과 조교수는 CNN 인터뷰에서 “저소비 생활은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소비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대한 (청년 세대의) 저항”이라고 분석했다. 청년 세대는 필요한 만큼만 가치 있는 곳에 쓰는 소비로 눈을 돌리고 있는 추세란 해석도 나온다. 트렌드 전문가 아구스 판조니는 가디언에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유행에 따라 빠르게 의류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것)의 해악이 대두되면서 중고품 소비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