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대개발 시대를 맞아 세계 각국이 AI 인재 양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늘날 AI 인재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중국과 미국.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중국투자진흥사무소(IPTO)가 ‘글로벌 AI 연구 보고서’에서 꼽은 전 세계 최고 AI 인재 100명을 보면 중국과 미국은 각각 57명, 20명을 확보하고 있다. 뒤이어 싱가포르(7명), 독일(5명), 영국(4명), 스위스·호주(2명) 등이었다. 한국은 단 1명에 그쳤다. 한국이 글로벌 AI 인재 경쟁력 순위에 아슬아슬하게 이름을 걸치고 있다는 얘기다. 인재 확보가 생명인 AI 경쟁에서 한국은 앞으로 어떤 전략을 써야 할까. WEEKLY BIZ는 지난 16일 국내에서 손꼽히는 AI 전문가인 조민수 포항공대 인공지능대학원 교수, 박진영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이미란 마이크로소프트(MS) 전무를 만나 한국의 AI 인재 양성 현주소를 진단해봤다.

WEEKLY BIZ는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사무실에서 이미란 MS 전무(왼쪽부터), 조민수 포항공대 교수, 박진영 성균관대 교수를 만났다. /김지호 기자

◇‘구멍 뚫린’ 교육 생태계

-대학의 AI 인재 양성 환경을 평가하면.

조민수 교수(이하 조)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교육에 관심이 높고, 최근 AI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AI 인재 양성의 토대가 좋다는 뜻이다. 다만 최근 공과대학들이 연구 중심으로 돌아서면서 교육에 조금 소홀해지고 있는 측면은 있다. 교수들이 연구 압박에 시달리면서 3~4과목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강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조 “예산 부족도 교육의 질이 낮아지는 원인 중 하나다. 가령 AI를 배우려면 ‘확률과 통계’ 같은 수학 이론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현업 경험이 많은 전담 강사를 뽑아서 별도 과목을 개설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대부분 대학에선 전공 교수가 수업 시간을 할애해 가르치거나 아예 건너뛰는 경우도 많다.”

박진영 교수(이하 박) “AI는 사실상 매달 새로운 트렌드가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전 속도가 빠르다. 미국 스탠퍼드대는 옆 동네에 있는 실리콘밸리 연구자를 강의에 초청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AI 생태계가 없는 데다 이를 극복하려는 각계의 협력 의지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어떤 협력이 부족하다는 뜻인가.

조 “대표적으로 미국은 대학과 기업 간 협력 생태계가 잘 구축돼 있다. 미국의 대학과 실리콘밸리에 있는 AI 기업은 서로 적극적이다. 각종 기술 교류는 물론 교수들의 기업 겸직도 원활하고, 자연스레 학생들은 다양한 인턴 기회를 얻는다. 이런 생태계에서 훌륭한 연구가 이뤄지고 기술 개발로 이어진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연구 데이터나 시설 공유에 상대적으로 방어적인 문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 연구진과 교류할 수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아시아(MSRA)와 같은 프로그램이 한국 인재들에게 더 소중한 것이다."

이미란 전무(이하 이) “MS는 인턴을 연구자로 본다. 인턴을 첫날부터 현재 MS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합류시키는 식이다. 그래픽처리 장치(GPU) 등 연구에 필요한 설비도 충분하게 제공한다. 국내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기본적으로 문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MS의 ‘오픈 문화’는 말 그대로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최신 기술에 대한 접근도 열려 있다는 의미다.”

◇개방이 혁신을 만든다

-최근 중국이 AI 기술에 두각을 드러내는 배경은.

이 “국가 전체가 총력전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나라도 AI 인재 양성을 위한 제도 등 환경적 개선을 하고 있지만 중국은 정부, 산업계나 학계 할 것 없이 다 같이 뛰어들었다. 중국의 AI 산업단지와 연구·개발(R&D) 허브가 총력전의 대표적 결과물이다. 대학가 근처에 AI 산업단지를 만들어서 연구, 투자, 서비스 개발 등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한국과 중국의 협력 상황은 어떤가.

조 “우리나라에선 미국 중심으로 협력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일이 많다. 중국과 협력하는 데는 기술 유출 걱정이 큰 것 같다. 하지만 최근 연구 성과를 보면 중국이 앞서 나가는 게 사실이고, 중국과 손잡을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솔직히 말하면 중국 교수들이 볼 때 한국 대학 또는 기업과 협력할 유인이 덜하기도 하다. 중국에 이미 대규모 AI 허브가 구축돼 있고, 공동 과제를 추진할 연구소나 기업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의 AI 인재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은데, 어떻게 보나.

조 “인재 유출보다는 인재들의 해외 진출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한국은 아직 젊은 인재들이 해외에서 배움과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이고, 시간이 지나면 이런 인재들이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당장 젊은 AI 인재들이 기술적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외국 빅테크로 가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AI 역량보다는 기초 교육 강화해야”

-초·중·고 때부터 AI 교육이 필요할까.

박 “AI의 최신 흐름은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에 교육이 쉽지 않다. 이미 교재로 만들어 가르치려는 순간 뒤처진 내용이 될 여지가 크다. 오히려 AI 인재로 거듭나기 위한 기본 교육을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 고등학교에선 수학이나 과학 과목을 선택적으로 배우고 있는데, 정작 학생들이 대학에 와선 기초 지식이 부족해서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적잖다.”

이 “학생들이 AI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AI 리터러시’는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AI 교육을 대학 이전부터 비중 있게 다루는 건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AI 열풍이 있지만 10년 뒤엔 또 모를 일 아닌가. 기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기본기가 탄탄해야 AI든, 로봇이든, 퀀텀이든 첨단 기술 인재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