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CGIG

미국의 5대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인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가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한 가운데 다섯 곳 모두 매출과 주당순이익(EPS) 등 주요 실적에서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은 3분기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 늘어난 471억달러, 순이익은 12% 증가한 143억달러를 기록했다고 14일 밝혔다. 같은 날 실적을 발표한 골드만삭스도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0% 늘어난 152억달러, 순이익은 37% 증가한 41억달러를 기록했다. 시티그룹은 매출이 9% 증가한 221억달러를 기록했는데 모든 사업부에서 3분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16% 증가한 38억달러였다.

다음 날에도 대형 투자은행들의 호실적 소식이 이어졌다. 지난 15일 실적을 발표한 BoA의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 늘어난 281억달러, 순이익은 23% 늘어난 85억달러였다. 모건스탠리 역시 매출이 전년보다 18% 늘어난 182억달러로 3분기 사상 최대를 나타냈고, 이에 힘입어 순이익은 무려 45% 커진 46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7~9월 미국 경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과 소비자 심리 위축, 고용 불안 등 불확실성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형 은행들이 지난 3분기 기록적인 실적을 낸 비결은 무엇일까. WEEKLY BIZ는 각 사의 실적 발표 자료와 콘퍼런스 콜 등을 종합해 호실적 이유를 분석해봤다.

◇트럼프의 규제 완화

3분기 대형 투자은행들의 가장 강력한 성장 동력은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등 자금 조달을 포함한 기업 ‘딜 메이킹(deal making)’의 급증에서 비롯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3분기 글로벌 거래 규모는 사상 둘째로 1조달러를 돌파할 정도로 M&A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제러미 바넘 JP모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여름은 오랜만에 M&A 공시가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5대 은행 가운데서는 전통적 예금·대출보다 주식·채권 발행, M&A 자문 등 투자은행(IB) 비중이 큰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골드만삭스의 IB 수수료는 전년 대비 40% 이상 늘었고, 그중 자문 수수료는 60% 급증했다. 골드만삭스 측은 “올해 누적 M&A 자문 순위에서 글로벌 1위를 지켰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 역시 딜 메이킹 수수료가 44% 늘었다.

100억달러 이상의 대형 거래가 많았던 것도 시장 규모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특히 BoA는 미국 최대 철도 회사 유니언퍼시픽과 노퍽서던의 710억달러 규모 M&A를 자문하는 등 자문 수수료가 51% 늘었고, 이에 IB 부문 수수료가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 알라스테어 보스윅 BoA CFO는 “현재 M&A를 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했다.

이처럼 올 하반기 기업 딜 메이킹이 활발했던 이유로 트럼프 취임 이후 금융 규제가 완화된 점이 꼽힌다. 구조조정과 M&A 승인 절차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면서 시장이 되살아난 것이다. BoA는 “규제 당국의 보다 균형 잡힌 접근으로 자본 시장에 선순환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고,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우호적으로 변하는 규제 환경 속에서 장기 전략적 의사 결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야후파이낸스는 “대형 투자은행들은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신속한 합병 승인 절차 덕분에 이득을 보고 있으며, 규제 당국이 약속한 자본 및 감독 요건 완화로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주식시장 랠리와 미미한 관세 영향

주식 시장의 활황과 긍정적인 투자 심리는 투자은행의 거래량 증가와 수익 확대를 이끌었다. 3분기 동안 뉴욕 증권시장의 주요 지수들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주식 시장에서 거래가 증가하면서 투자은행들의 수익에 보탬이 된 것이다.

JP모건의 자산·자산관리(AWM) 부문은 순유입 증가와 시장 가격 상승에 힘입어 고객이 맡긴 자산이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 BoA는 세일즈·트레이딩 부문의 수익이 전년 대비 8% 증가하며 14분기 연속 성장세를 이어간 가운데 고객 자산이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 시티그룹의 경우, 시장 호황으로 주식과 파생상품 거래가 늘고 헤지펀드 등을 상대로 하는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의 지속된 호조에 힘입어 잔액이 44% 증가했다.

한편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부정적 파급 효과는 우려보다 작아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게 투자은행들의 자체 평가다. 브라이언 모이니핸 BoA CEO는 “(3분기 들어) 무역과 관세, 세금에 대한 확실성이 더 커지면서 고객들이 장기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됐고, 이것이 실적에 반영됐다”고 했다. 다이먼 회장도 “관세 및 무역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회복력을 유지했다”고 했다.

◇경계 늦추지 않은 은행들

3분기 ‘깜짝 실적’에도 불구하고 대형 투자은행 경영진은 향후 불확실성이 세계 경제와 시장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다이먼 회장은 “거품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산이 많이 있다”며 “여전히 엄청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과 관세 및 무역 불확실성, 상승한 자산 가격, 그리고 고착화된 인플레이션 위험 등을 불확실성 지속 요인으로 꼽았다. 바넘 CFO도 “현재의 건설적인 환경이 하룻밤 사이에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제인 프레이저 시티그룹 CEO는 “장이 관세나 기타 역풍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상승세를 보였다”며 “어느 시점에 조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테드 픽 모건스탠리 회장도 지정학적 불확실성 때문에 자본 시장이 위험 회피를 유발하거나 자산 가격이 조정되면서 창구가 닫힐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은행들은 현재 금융권의 신용 건전성이 양호하다고 진단하면서도, 최근 일부 중소형 은행에서 부실 대출 우려로 거품 논란이 이는 데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다이먼 회장은 최근 자동차 담보 대출 업체 트라이컬러의 파산 사태 등을 지목해 부실 대출을 ‘바퀴벌레’에 비교하며 “바퀴벌레가 한 마리 나타났다면 (실제로는) 아마도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노동시장이 악화될 경우 소비자 신용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중소형 은행이 연쇄적으로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파산으로 미국 은행 부문에 대한 신뢰 우려가 월가에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인공지능(AI) 붐이 주도하는 주식시장 랠리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주식시장 등에서) AI 붐에 의해 주도되는 랠리에 따른 투자자들의 상당한 환희가 있다”면서 “역사적으로 이러한 흥분기 이후에는 경기 침체가 뒤따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