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미국에 사는 20대 여성 캐미 크레이크로프트는 생일을 맞아 친구들과 ‘빌드어베어’ 매장을 찾았다. 캐미는 이곳에서 친구들과 파티를 하며 각자 원하는 인형을 고르고, 어울리는 인형 옷과 액세서리까지 고른 뒤 직접 만든 인형을 집에 가져갔다. 캐미는 최근 미 CNBC 인터뷰에서 “어릴 적부터 줄곧 빌드어베어에서 생일 파티를 열었기 때문에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즐거운 추억이 많고 향수를 자극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3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인형 판매 업체 ‘빌드어베어워크숍(Build-A-Bear Workshop)’의 주가가 최근 5년 사이 2000% 넘게 급등하며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2020년 9월에 3.46달러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지난달 73.98달러로 치솟았다. 통상적으로 텐배거(10배 수익률을 낸 주식 종목)는 인공지능 반도체의 대장주 엔비디아,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기업 오러클 등 기술 중심의 고성장 기업에서 나오곤 했다. 그러나 빌드어베어는 단순한 ‘인형 가게’라는 이미지를 넘어, 체험형 매장 운영과 캐릭터 IP(지식재산권) 확장 전략으로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 WEEKLY BIZ는 ‘장난감계의 엔비디아’란 말까지 듣는 빌드어베어의 비결을 분석했다.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는 ‘체험’
빌드어베어 매장의 가장 큰 매력은 고객이 단순히 인형을 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과정’을 경험한다는 점이다. 매장을 방문한 고객은 원하는 인형을 고르고 솜을 채운 뒤 바느질로 꿰매기 전 일종의 생명을 불어넣는 의식인 ‘하트 세리머니’까지 진행한다. 직원이 고객에게 하트 모양의 천 조각을 건네면 이를 손에 쥔 채 따뜻해지도록 문지르는 것이다.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로 제자리에서 세 번 뛰기도 한다. 의식은 원하는 소원을 비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에 더해 맞춤형 음성 녹음과 향기를 인형에 추가할 수 있고, 완성된 인형에 이름을 지어준 뒤 출생증명서도 받을 수 있다. 마치 나무 인형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요정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주는 셈이다.
이처럼 특별한 경험을 한 고객은 자연스레 자신의 개인 정보를 남기는 데 동의한다고 한다. 미 경제 전문지 포천은 빌드어베어의 고객 정보 확보율이 85%에 달하며 이는 소매 업계에서 놀라운 수치라고 평가했다. 샤론 프라이스 존 최고경영자(CEO)는 “평생 함께할 곰 인형 친구를 만드는 환상적인 시간을 (고객에게) 선사하면 더 쉽게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며 “이는 (회사와 고객의) 관계를 더 역동적으로 만든다”고 했다.
◇노스탤지어에 젖은 키덜트 공략
빌드어베어의 또 다른 무기는 ‘추억’이다. 어린 시절 직접 나만의 곰을 만든 경험은 아이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성인이 된 뒤에도 그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매장을 찾고, 이번엔 자녀와도 함께 인형을 만든다. 브랜드와의 정서적 유대가 세대를 넘어 이어지며 장기적인 충성 고객층을 형성하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SCC리서치의 에릭 베더를 인용, 빌드어베어 매출 가운데 약 40%가 성인 고객에게서 나온다고 전했다. 빌드어베어가 최근 실시한 자체 설문에서도 성인 고객의 92%가 “여전히 어릴 적 곰 인형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아메리쿠스 리드 마케팅 교수는 CNBC에 “빌드어베어가 성인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건 향수가 핵심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며 “(선택지가 넘쳐 나는) ‘주의력 결핍 경제(attention deficit economy)’에서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성인 고객층 비율이 커지자 빌드어베어는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자디(Zaddy)’ 인형 등 밸런타인데이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또한 포켓몬·헬로키티·해리포터 등 향수를 자극할 만한 브랜드와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존 CEO는 “‘자디’는 어른이 어른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30년 가까이 쌓아온 브랜드 자산 덕분에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그 시절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빌드어베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세 리스크 넘어선 ‘펀더멘털’
빌드어베어가 최근 주가 급등세를 이어가는 데에는 독특한 마케팅 전략 못지않게 탄탄한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회사는 5년 연속 사상 최대 매출을 갈아치우고 있으며, 세전 이익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빌드어베어의 지난 2분기 총매출은 전년 대비 11% 증가했고, 순매출도 10.8% 늘었다. 특히 올해 세전 이익 예상치를 6100만~6700만달러에서 6200만~7000만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미 투자 리서치 회사 아거스 리서치의 스티브 실버 애널리스트는 “빌드어베어는 밈 주식이나 거품이 아니다”라며 “회사가 지난 몇 년 동안 보여온 펀더멘털이 뒤늦게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부분의 제품을 중국과 베트남에서 들여오는 빌드어베어는 최근 고(高)관세 부담에도 불구하고 점포 수를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빌드어베어는 전 세계 32국에 있는 쇼핑몰을 비롯해 관광지, 크루즈선, 백화점 등에 입점한 점포 627곳을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100여 점포는 최근 2년 사이 새로 문을 열었다. 다만 미국의 대(對)중국 관세 영향으로 1100만달러의 손실은 예상된다. 그러나 영국 컨설팅사 글로벌데이터의 닐 손더스 전무는 “관세 영향으로 다소 주가 하방 리스크가 있겠지만, 다른 글로벌 장난감 기업들에 비하면 훨씬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