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일본 도쿄의 대형 복합 단지 아자부다이 힐스에 문을 연 ‘팀랩 보더리스’가 개관 1주년을 맞았다. 연간 방문객은 155만명에 달했으며, 이 중 해외 방문객 비율이 65%였다. 지난해 7월에는 미국 타임지가 이곳을 ‘세계 100대 명소(호텔 포함)’ 중 하나로 선정했다.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화제일까.
팀랩은 2001년 이노코 도시유키가 설립한 일본의 디지털 아트 회사로,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허무는 몰입형 전시로 유명하다. 2018년 도쿄 오다이바에 세계 최초의 상설관 ‘팀랩 보더리스’를 열었고, 이후 아자부다이 힐스의 개장에 맞춰 더 풍부한 콘텐츠로 무장해 이전했다. 2018년 오다이바 전시를 찾았을 때 천장에서 벽을 타고 흘러내리던 꽃이 손끝에 닿자마자 흩어져 버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아자부다이 힐스에서는 내가 그린 오징어 그림이 화면 속에서 살아 움직이더니, 손으로 오징어를 때리자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어떤 기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냥 신기했다.
‘보더리스(Borderless)’, 즉 경계가 없다는 말은 공간과 작품, 사람의 경계가 사라짐을 뜻한다. 도쿄 도요스 전시장은 ‘팀랩 플래닛츠(Planets)’라 이름 붙였는데, ‘몸이 행성처럼 되는 경험’을 표방한다. 물과 빛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니 그럴싸하다.
2018년 오다이바에서 성공을 거둔 팀랩은 일본은 물론 해외로 활동 무대를 넓혀갔다. 현재 일본에는 11곳, 해외에는 9곳이 있다. 특히 지난 4월 아부다비에 오픈한 ‘팀랩 페노메나’는 연면적 1만7000㎡를 자랑한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6개관을 합한 것보다 조금 크다고 하니 압도적인 규모다.
지난 10월엔 교토에 ‘팀랩 바이오보르텍스’가 문을 열었다. 일본 내 최대 규모인 1만㎡에 달한다. ‘바이오’는 생명, ‘보르텍스’는 소용돌이를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일부 공간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지럽다. 심지어 누워서 보길 권장하는 코너도 있다. ‘팀랩 바이오보르텍스’는 교토역 남동쪽, 걸어서 갈 만한 곳에 있다. 기존 관광지와는 무관한 지역이다. 오직 팀랩을 보기 위해 찾아가야만 하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가족 단위의 볼거리를 많이 갖추었다. ‘운동의 숲’이라는 공간은 통통 튀는 바닥에서 점프하거나 공중 다리를 건너며 마치 우주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학습하자! 미래의 유원지’라는 공간도 흥미롭다. 그림을 그리고, 굴리고 올려놓는 간단한 행동만으로 화면 속 세계가 즉시 반응하며, 아이는 스스로 규칙을 발견하고 친구와 협력한다. 팀랩이 가족 단위의 고객까지 확장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팀랩의 작품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그것만 봐도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네덜란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쓰여 있는 문구로 답하고 싶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여러분 집의 머그잔에도, 우산에도 그려져 있다. 하지만 실물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실제 작품을 볼 때는 감정적 반응이 10배 이상 강하게 일어난다. 뇌 속의 ‘가치 판단 시스템’과 ‘감정과 정보를 연결하는 부분’이 진짜 예술 작품을 볼 때 훨씬 더 강하게 자극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와 아트의 결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LG전자가 순수미술 작가의 작품을 디자인에 접목한 주방 가전 시리즈 ‘아트 디오스(Art Dios)’를 선보인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젠틀몬스터는 매장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닌 예술적 공간으로 연출한다. 팀랩은 어떨까. 이미 2022년부터 삼성 갤럭시와 협력해 ‘갤럭시 하라주쿠’에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예술은 전통적인 아트뿐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모든 산업에 침투하고 있다. 온라인과 차별화를 위해 오프라인에서는 체험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아트를 더한다면 그 파괴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젠틀몬스터 매장이나 ‘갤럭시 하라주쿠’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