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연금을 받는 은퇴자들의 소득이 일하는 젊은 층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룩셈부르크소득연구(LIS)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프랑스에서 생산 가능 인구(15~64세)의 중위 소득을 100이라 했을 때, 65세 이상의 중위 소득은 약 101로 집계됐다. 이는 이탈리아(94), 노르웨이(87), 미국(86), 독일(85), 영국(78), 네덜란드(75), 일본(72), 호주(63) 등보다 높은 수치다. FT는 “65세 이상 인구의 소득이 근로 연령층보다 더 높은 현상은 국제적으로도, 프랑스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연금 실수령액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프랑스의 평균 연금 월 순수령액은 1366유로(약 225만원)다. 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약 72%로, 미국 49%, 독일 53% 등보다 높다. 은퇴 정년과 연금 수령 시점 사이에 소득 공백이 없다.
부동산 등 자산 쏠림 현상도 은퇴자들이 근로자들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소득을 유지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비영리단체 라그랑드콩베르사시옹에 따르면, 프랑스 전체 금융·부동산자산의 60%를 60세 이상이 보유하는 유례없는 자산 집중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편중이 젊은 근로 소득자들의 임대료와 이자 부담 등을 가중시켜 가처분소득을 감소시킨다는 분석이다. 라그랑드콩베르사시옹은 “프랑스의 현재 은퇴자는 부모 세대보다 생활 수준이 30% 높고, 자녀 세대가 은퇴하게 될 때보다 생활 수준이 20% 높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과도한 연금 제도는 세대 간 불균형뿐만 아니라 고질적인 재정 적자 문제를 누적시키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 복지 및 의료 지출은 GDP의 32.3%에 이르는데, 이는 유럽연합(EU) 평균인 26%를 크게 웃돈다. 연금과 복지 지출 등은 고령화와 저성장 때문에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재무부에 따르면 내년 공공 지출은 511억유로 증가해 재정 적자가 GDP 대비 6.1%로 늘어날 전망이다.
프랑스는 정부 부채 비율이 높은 가운데 재정 적자까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의 정부 부채는 약 3조3000억유로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2%다. 유로존(유로 사용국)에서 그리스·이탈리아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2019년과 비교하면 15%포인트가량 올라갔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는 이 같은 재정 적자와 부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정치적 혼란만 지속되고 있다. 긴축 재정을 골자로 하는 정책이 대대적인 반대에 부딪히며 2년 새 무려 다섯 명의 총리가 사임했다. 이들의 임기는 평균 6개월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달에는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공휴일 2일 축소, 연금 동결, 의료 예산 감축 등을 포함해 총 440억유로(약 72조원)의 지출을 줄이겠다는 내년도 예산안을 내놨다가 프랑스 하원에서 압도적 표차로 불신임돼 실각했다. 이어 지난 6일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도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전격 사임하면서, 프랑스 정국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내세우는 긴축 예산안이나 연금 개혁 같은 주요 법안이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통과가 어려워지고,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는 계속해서 의회 불신임의 위협에 시달리며 사임을 반복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