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출신 영국 화가 헨리 푸셀리의 '악몽(1781)'. /조선일보DB

중세 유럽의 전설에는 여성의 모습으로 둔갑한 뒤 인간 남자의 꿈에 나타나 유혹하는 악마 ‘서큐버스’와 인간 여자의 꿈에 등장해 타락시키는 ‘인큐버스’가 전해 내려온다. 두 악마는 숙면 중인 사람의 기력을 빨아들이는 존재로 여겨졌다. ‘악몽’을 뜻하는 영단어 ‘nightmare’도 잠든 이의 가슴 위에 앉아 질식시키는 악령을 의미하는 고대 영어 ‘maere’에서 비롯됐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은 ‘nightmare’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을 1300년대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악몽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오랜 세월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아 왔다. 누구나 한 번쯤은 악몽을 꾸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학계에서 악몽을 자주 꾸면 실제로 건강이 악화할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전했다. 이에 WEEKLY BIZ는 잦은 악몽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들을 짚어봤다.

◇조기 사망률 세 배 높아

악몽을 자주 꾸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기에 사망할 위험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과 아비데미 오타이쿠 영국 치매 연구소 박사 연구진에 따르면 주 1회 이상 악몽을 꾸는 성인은 한 달에 한 번 미만으로 꾸는 사람보다 70세 이전에 사망할 확률이 세 배 이상 높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미국과 영국 등에서 성인 18만3012명과 어린이 2429명을 대상으로 최장 19년에 걸쳐 진행된 6건의 추적 연구를 분석해 얻은 이 같은 결과를 유럽신경학회(EAN)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매주 꾸는 악몽이 흡연이나 비만, 부적절한 식습관, 신체 활동 부족 등 기존에 알려진 위험 요인보다도 조기 사망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오타이쿠 박사는 “악몽은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고 식은땀을 흘리게 한다”며 “스트레스 반응이 깨어 있는 상태의 그 어떤 경험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뇌는 잠들어 있을 때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신체 노화 시계도 빨라져

악몽은 신체의 노화 속도를 높이기도 한다. 연구진이 텔로미어(염색체 끝부분에 붙어 세포 수명을 결정짓는 DNA 조각) 길이 등을 측정해 생물학적 노화 속도를 분석한 결과, 악몽을 자주 꾸는 성인과 어린이의 노화가 더 빨랐다. 연구진은 이런 현상이 연령과 성별, 인종, 정신건강 상태와 관계없이 일관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악몽을 한 달에 한 번 꾸는 것만으로도 노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잦은 악몽으로 인한 만성 스트레스와 수면장애가 신체 노화를 가속한다고 봤다. 먼저, 잦은 악몽은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장기적으로는 고혈압, 근육 손상, 만성 피로, 불면증 등을 유발한다. 이는 신체 전반의 노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악몽은 또 수면의 질과 양에 악영향을 미쳐 우리 몸이 야간에 세포를 복구·재생시키는 과정도 방해한다.

◇악몽은 예방·치료 가능해

다행히 악몽은 예방과 치료가 모두 가능하다. 오타이쿠 박사는 “무서운 영화 피하기와 올바른 수면 습관 들이기, 스트레스 관리 및 불안·우울증 치료 등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악몽을 줄일 수 있다”며 “삶의 질을 저해할 정도로 악몽을 자주 꾸는 사람은 전문의를 찾아 도움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리허설 요법이나 인지행동치료(CBT-I) 등도 악몽 치료에 효과적이다. 최근엔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오타이쿠 박사는 “악몽은 흔하지만 치료할 수 있는 영역인 만큼 공중보건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며 “악몽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노화를 늦추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