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연막탄을 들고 있다. 이날 시위대는 정부의 긴축예산안과 연금·복지 축소 정책에 항의해 도로를 봉쇄하고 불을 지르는 등 경찰과 충돌했다. /AFP 연합뉴스

최근 정치적·재정적 위기를 겪는 프랑스가 국제 신용 평가사에서 줄줄이 신용 등급을 강등당하는 위기에 처했다. 신용 평가사 피치는 지난 12일 프랑스의 신용 등급을 ‘AA-’에서 ‘A+’로 떨어뜨렸다고 발표했다. 이어 19일에는 모닝스타의 자회사 DBRS도 프랑스의 신용 등급을 종전 ‘AA(상·high)’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DBRS는 위상이 3대 신용 평가사 다음가는 회사다.

피치와 함께 3대 신용 평가사라고 하는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오는 10~11월 프랑스의 신용 등급을 발표할 예정이다. 시장 전문가 사이에선 두 회사도 피치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신용 등급을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WEEKLY BIZ는 프랑스의 신용 등급 강등 배경과 추후 전망을 다섯 문답으로 짚어봤다.

◇Q1. 등급을 내린 주요 이유는

프랑스는 정부 부채 비율이 높은 가운데 재정 적자까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의 정부 부채는 약 3조3000억유로(약 5400조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2%다. 유로존(유로 사용국)에서 그리스·이탈리아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2019년과 비교하면 15%포인트가량 올라갔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기업과 가계를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지출한 데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가 겹치며 5년 새 부채 비율이 급등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감세 정책을 펼치며 세금 수입이 줄어든 가운데 비대한 사회 복지 등 공공 지출을 줄이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프랑스의 사회 복지 및 의료 지출은 GDP의 32.3%에 이르는데 이는 유럽연합(EU) 평균인 26%를 크게 웃돈다.

복지 지출 등은 고령화와 저성장 때문에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재무부에 따르면 내년 공공 지출은 511억유로 증가해 재정 적자가 GDP 대비 6.1%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올해 예측치인 5.4%를 넘으며, EU에 제출한 목표치인 4.6%를 크게 뛰어넘는다. 지출이 늘며 프랑스의 부채 비율은 2029년 125.3%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피치는 보고서에서 “프랑스의 2027년 GDP 대비 부채가 121%까지 증가할 전망”이라며 “프랑스는 재정 건전화 및 EU 재정 준칙 준수에서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래픽=김의균

◇Q2. 재정 적자 문제, 왜 해결 못 하나

정치적 분열은 문제를 키우고 있다. DBRS는 “프랑스의 정치적 환경과 정부 불안정성 증가가 재정 정책 조율의 효과를 제한한다”며 “우리는 재정 목표를 달성할 프랑스의 수행 능력이 앞으로 수년 동안 위험에 처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가 지난 8일 의회에서 불신임돼 실각한 것은 피치와 DBRS가 신용 등급을 내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바이루는 공휴일 2일 축소, 연금 동결, 의료 예산 감축 등을 포함해 총 440억유로(약 72조원)의 지출을 줄이겠다는 내년도 예산안을 내놨다. 프랑스 하원은 예산안 제출 직후 바이루에 대한 신임 여부를 묻는 표결에서 반대 364명, 찬성 194명의 압도적 표차로 불신임을 결정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세바스티앵 르코르뉘를 신임 총리로 임명함으로써 프랑스는 2년 사이 총리를 4번이나 교체하게 됐다.

지난 18일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긴축정책 반대 시위에 등장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의 피켓. /EPA 연합뉴스

바이루를 비롯해 긴축 예산을 추진한 총리들이 잇따라 물러나면서 나랏돈을 풀어 표를 얻는 ‘재정 포퓰리즘’이 프랑스의 재정 건전성을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피치는 “총리 신임 투표에서 패배한 것은 국내 정치의 분열과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Q3. 새 총리는 상황 바꿀 수 있나

르코르뉘가 단기간에 반전을 꾀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채 내년도 예산안 초안을 10월 초까지 의회에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르코르뉘는 총리 임명 직후 연설에서 “더 창의적이고, 기술적이고, 진지한 협상 방식으로 야당과 만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총리만 바뀌었을 뿐 정치 지형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긴축 재정을 밀어붙이긴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바이루 신임 투표 당시 좌파 연합 및 강경 우파 국민연합(RN) 등 야권 대부분이 반대표를 던졌고, 여기에 우파 공화당 일부 의원까지 동참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의석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르코르뉘는 바이루와 마찬가지로 타협에 나서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로이터는 “피치의 신용 등급 강등이 내년도 긴축 예산안을 마련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르코르뉘를 (타협하라고) 압박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야당과 타협하기 위해 긴축 재정을 고수하기 어렵고, 결국 재정 건전성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피치는 “정치적 불안정성은 재정 건전성을 달성하는 시스템의 역량을 약화한다”며 “2029년까지 재정 적자를 (EU 재정 준칙 목표치인) GDP의 3% 이하로 낮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며 정치적 교착 상태가 선거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S&P는 바이루의 불신임 직후인 지난 10일 낸 보고서에서 “2027년 4월 대통령 선거까지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Q4. 무디스·S&P도 내릴까

이런 상황에서 무디스와 S&P도 각각 오는 10월 24일, 11월 28일에 프랑스의 신용 등급을 발표할 예정이다. 시장에선 특히 S&P의 하향 조정 가능성을 주목한다. S&P는 현재 프랑스의 신용 등급을 ‘AA-’로 매기고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간 S&P는 프랑스 정부가 지속적으로 큰 예산 적자를 줄이지 못할 경우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프랑스 신용 등급을 ‘Aa3’으로 책정한 무디스는 등급 전망이 ‘안정적’이어서 강등을 단정하긴 어렵지만, 등급 결정은 전망과 독립적이기 때문에 등급을 하향 조정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시장 반응 또한 긍정적이지 않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이코노미스트 모히트 쿠마르는 “새로운 르코르뉘 내각이 신뢰할 만한 재정 개혁을 이행할 것으로 보이지 않아 부정적인 입장”이라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된다면 최소한 한번 더 신용 등급이 하향 조정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시티은행의 유럽 금리 전략 부문 이사인 아만 반살은 “(바이루 신임에 대한) 투표 결과로 인해 신용 등급 하향 조정 위험이 커졌다”고 했다. 금융 정보 기업 인베스팅닷컴은 “무디스와 S&P도 향후 신용 등급을 강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고, 미국 CNBC도 “피치의 하향 조정에 이어 다른 기관들도 이에 따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Q5. 추가 강등에 따른 파급효과는

무디스와 S&P의 하향 조정이 발생하더라도 금융시장에 미치는 당장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국채 금리는 스페인, 그리스보다 높고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으로 벌써 올라가 있다. 이에 대해 ING은행은 “시장은 프랑스의 등급 강등 가능성을 이미 반영했다”며 “유로존 위기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신용 등급이 하락하면 프랑스 정부는 각종 차입 비용이 상승해 재정 악화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1년 전 연 2.9% 수준이던 10년 만기 프랑스 국채 금리는 지난 22일 기준 3.56%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