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대형 쇼핑몰 '긴자 식스'의 디올 플래그십 매장의 야경. /긴자 식스

널리 회자되는 일화에 따르면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제국을 일군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0년대 미국 출장길이었다. 택시 기사에게 “프랑스 대통령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크리스찬 디올은 안다”는 말을 듣고는 럭셔리 산업의 가능성을 파악했다고 한다. 실제로 아르노는 1984년 기업 인수를 통해 디올을 손에 넣으면서 럭셔리 제국의 발판을 닦기 시작했다.

1905년생인 디올은 1947년 첫 오트 쿠튀르(최고급 수제 맞춤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당시 프랑스는 전후 복구에 한창이었다. 원단을 배급받아 썼고, 직물도 부족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경이 그의 재능을 가릴 수는 없었다. 그는 패션계의 총아로 떠올랐고, 그로 인해 파리는 ‘패션 수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디올은 디자이너면서도 사업가였다. 패션 디자이너 중 꽤 이른 시기에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53년 도쿄의 ‘문화복장학원’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해 대도시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 서구에 대한 동경심이 컸던 당시 일본에서 최첨단 서양 패션의 등장은 화제의 대상이었다. 같은 해 디올은 독점 라이선스 형식으로 일본에 진출했다.

럭셔리 제품은 포장부터 명품답다. 아이폰이 갤럭시와 출시 경쟁에 한창일 무렵, 스티브 잡스가 포장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담당 임원에게 “고객이 우리의 제품을 먼저 보는가, 아니면 포장을 먼저 보는가”라고 일침을 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단독 매장을 갖고 있는 브랜드는 건물부터 명품이어야 한다. 굳이 유명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것은 건물부터 명품이어야 한다는 럭셔리 브랜드의 속성 때문이다.

도쿄에서 디올 부티크를 찾아보자. 오모테산도에는 2003년 SANAA(세지마 가즈요·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한 디올 매장이 있다. SANAA는 2010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그룹이다. 긴자에는 2017년 다니구치 요시오가 설계한 대형 쇼핑몰 ‘긴자 식스’ 안에 디올 플래그십 매장이 들어셨다. 다니구치는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재단장 프로젝트를 실시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건축가다. 지난해엔 아자부다이 힐스 단지 내에 신규 디올 부티크가 문을 열었는데, 2020년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구마 겐고의 작품이다.

디올은 살아생전 우아함을 강조했다. 이 관점에서 세 공간을 살펴보자. 오모테산도점은 유백색의 겹유리로 외벽을 쌓았다. 밤엔 큰 라이트 박스처럼 은은하게 빛난다. 긴자 식스점은 디올 덕분에 한층 우아하다. 저녁 무렵 긴자 식스의 대각선 방향에 서서 ‘Dior’이란 글자가 보이도록 배경 구도를 잡은 뒤 독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는 사람도 꽤 있다. 아자부다이 힐스점을 저녁때 바라보면 ‘빛의 드레스’를 걸친 건물이란 느낌이 든다. 세 공간 모두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디올은 우아함을 ‘차별성, 자연스러움, 세심함, 그리고 단순함의 올바른 조합’이라고 정의했다. 이 네 요소 중 하나라도 빠져 있으면 결코 우아할 수 없다. 특히 첫째 요소인 차별성(distinction)에 눈길이 간다. 막연한 차이나 유일무이함보다도 탁월함, 명성에 기반한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 군계일학이어야 진정한 차별이란 의미다.

어디 우아함이 패션계에만 필요할까. 모든 산업이 감성을 입히려는 시대를 맞아 우아함은 무엇보다 중요한 키워드다. 한순간 인기를 몰았다가 사라지는 제품이 많은 오늘날, 우아함이야말로 오랫동안 브랜드의 명성을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