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인공지능(AI) 시대는 누구를 꺾고 시장을 독차지한다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질서가 이미 시장을 주도하는 만큼, 그 안에서 어떤 생존의 무기를 가질 것인지를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두 세력 사이에서 독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대만·일본뿐입니다. 대립보다는 협력을 통해 각자의 생존 전략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대만 최대 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DIGITIMES) 황친융(黃欽勇) 회장이 한국과 대만의 AI 시대 생존 전략에 대해 내놓은 대답이다. 황 회장은 언론인이자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 산업 전문 분석가로, 업계 흐름을 꾸준히 짚어왔다. 과거 국책 연구원 재직 시절엔 한국에서 약 2년가량 근무한 ‘한국통’으로도 알려졌다. 황 회장은 올해 초에는 ‘TSMC와 트럼프 이펙트: 대격변 예고’란 책을 한국어로 발간해 반도체와 AI 업계의 지형 변화를 상세히 분석하기도 했다. WEEKLY BIZ는 최근 대만 타이베이 쑹산구 디지타임스 사옥에서 황 회장을 만나, 동북아 지역의 반도체와 AI의 지형 격변에 대한 분석을 들었다.
◇韓 ‘AI 3대 강국’ 목표… 통할까?
-페이스북에서 현재 AI와 반도체 시장을 ‘천지인(天地人)’ 개념에 빗대어 설명했는데.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분야를 독점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미국을 ‘하늘’, 거대한 생산의 거점이자 기반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을 ‘땅’,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원천 산업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대만·일본을 그 사이 도전에 직면한 ‘사람’의 위치에 빗댔다. 미국과 중국 위주로 형성된 기본 질서를 거스르는 대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의 답을 찾아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의미다.”
-격변하는 AI 시대에 대만은 순조롭게 안착한 반면, 한국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과 한국이 AI 생태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짚고 싶다. 대만 기업들은 언제나 ‘우리는 파트너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조를 요청하는 반도체 설계 기업들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할 뿐 자체 브랜드를 내세워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TSMC의 경영 원칙이 대표적인 예다. 반면 한국에선 공존보다 승자 독식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한국 지도자들은 ‘AI 3대 강국’ 같은 구호를 내세운다. 승자 독식적 세계관으로는 절대 현실적인 전략을 세울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인 방법론을 말해달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빨리 식별하고 집중하는 쪽으로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 이미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AI 생태계 격차는 작지 않다. 또 반도체 산업의 저변을 가늠할 수 있는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 수만 보더라도, 대만은 50~55개가 활동 중이지만 한국은 10개 안팎에 불과하다. 이 격차를 ‘따라잡겠다’고 생각하면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대신 두 시간 반만 비행하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대만)의 AI 생태계 활용 방법을 연구하는 편이 훨씬 전략적이다.”
◇전 세계가 보는 대만 IT 뉴스
-디지타임스는 어떤 회사인가.
“1998년 창립된 디지타임스는 단순히 뉴스를 전하는 것뿐 아니라, 구체적인 산업 분야의 분석 리포트도 작성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23개 IT 분야에서 연간 340개의 보고서를 냈다. 일반인 구독자들보다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유료 구독 플랫폼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7만2000개의 계정이 디지타임스를 구독하고 있고, 그중 6000개는 한국에서 구독 중이다. IT 전문 매체로서 아시아 지역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어떻게 디지타임스를 창립하게 됐나.
“국책 연구원에서 IT 산업을 분석하는 연구원직을 맡고 있던 당시 장중머우 TSMC 창업자, 스전룽 에이서 창립자 등 대만 주요 IT 기업 거물 창업자들이 나에게 매체 설립을 권유했다. 업계 내부에서 생산되는 정보를 외부에 해설하고 정리하는 플랫폼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언론사들이 경영 위기를 맞고 있는 반면, 디지타임스는 유료 구독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얻고 있다. 특히 영어로 된 디지타임스 웹사이트가 전체 수익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대만 위주의 IT 뉴스를 전 세계 국가들이 관심 있게 지켜본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