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쿤밍의 한 시장 모습. 지난 10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8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0.4%를 기록했다고 밝혔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초 취임 직후 각국을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자 전 세계는 물가 급등 우려에 휩싸였다. 관세 충격으로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서 인플레이션 압박이 곧바로 나타날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아시아 여러 국가에선 예상과 달리 물가 상승세가 꺾였고, 일부 국가는 디플레이션(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현상)과 그로 인한 침체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WEEKLY BIZ가 최근 아시아 디플레이션 현상과 그 원인을 다섯 문답으로 정리했다.

그래픽=김의균

◇Q1. 아시아 각국의 상황은 어떤가

중국과 태국은 물가 상승률(지난해 같은 달 대비)이 0% 아래로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난 1월 물가 상승률 0.5%를 기록한 이후, 2월 -0.7%, 3~5월 -0.1%로 네 달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6월엔 정부의 소비 진작 정책 등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플러스(0.1%)를 기록했으나, 7월 0%, 8월엔 -0.4%로 다시 주저앉았다. 태국의 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부터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 중이다.

중국과 태국처럼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진 않았더라도, 여러 아시아 주요국의 물가 상승률은 최근 수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시사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인용, “지난 7월 일본과 (8%대 고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방글라데시를 제외한 아시아 10대 경제 대국의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평균 1.3% 수준에 그쳤다”고 전했다. 인도의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6% 넘게 올랐다가 지난 7월 1.6%로 내려앉아 2017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말레이시아도 지난해 7월 2%였던 물가 상승률이 꾸준히 둔화해 최근 1% 초반에 머물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달 발표한 ‘2025년 7월 아시아 경제 보충 전망’에서 “올해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 목표치 이하로 내려갔다”고 했다.

◇Q2.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나

아시아를 강타하는 물가 하락 압력의 주요 원인으로는 중국발(發) ‘저가 공세’가 꼽힌다. 중국이 과잉 생산한 제품을 내수 부진 탓에 자국 내에서 소화하지 못하면서 아시아 주변국으로 저가에 수출해 공급 과잉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철강·자동차·석유화학 등 여러 산업에 보조금을 뿌려, 기업들의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 이렇게 늘어난 물량은 결국 염가에 전 세계로 수출됐다. 실제 2022년 이후 중국의 수출량은 증가했지만 수출물가지수(수출품 가격 가중평균)는 약 15% 하락했다. 그 사이 중국의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대한 상품 무역 흑자는 두 배로 증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 파급 효과로 아시아 경제권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저가 중국산 자동차 판매가 늘면서 태국의 자동차 가격은 1년 동안 6% 하락했고, 베트남과 싱가포르의 스마트폰 업체들은 중국 업체와의 경쟁으로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더해 중국이 내수 부진으로 생산품을 소비할 여력이 줄어들자 남는 물량이 더욱 수출로 쏠리며 아시아 국가들의 물가 하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저축 심리가 커지고 부동산 시장 침체가 덮치면서 중국의 내수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했고, ADB는 “중국의 물가 상승률이 올해 2~5월까지 마이너스로 전환되면서, 이는 아시아 전반(주로 개발도상국)의 물가 상승률 하락을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Q3. 다른 이유도 있다면

ADB 등 주요 기관은 물가 상승률 둔화의 또 다른 요인으로 국제 유가 및 식량 가격 하락, 소비 수요 위축, 긴축적 통화정책 등을 들었다.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올해 시추를 늘리기로 결정하면서 안정세를 유지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며 밀 생산량이 늘고, 중국의 돼지 농가가 돼지고기를 과잉 공급하면서 식량 물가 상승률도 진정됐다. 이에 아시아 10대 경제 대국의 평균 식량 물가 상승률은 5%에서 1%까지 떨어졌다.

당초 우려했던 미국의 관세 조치로 인한 효과는 아직까지 아시아 국가들의 물가 변동에 큰 변수가 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관세 조치가 발효되기 전 미국 기업들의 사재기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량이 증가하면서 미국으로 가야 할 물건이 아시아로 되돌아와 물가를 누르는 현상이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Q4. 아시아 각국으로 디플레이션 번지나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는 것을 넘어 아시아 전반에 디플레이션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디플레이션 위협이 아시아 경제를 휩쓸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시아 주요 5국의 인플레이션이 각국의 중앙은행이 목표로 삼는 물가 상승률 하단보다 낮아 디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다만 국제통화기금(IMF)·OECD·ADB 등 주요 경제기구들은 아직 “아시아 주요국이 디플레이션에 빠졌다”는 표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은 상태다.

올 들어 수개월 동안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중국과 태국 정부도 아직 공식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최근 “경제 운영의 일부 문제(과잉 경쟁으로 인한 공급 과잉)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저해하고 있다”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지난 4일 태국 정부는 3·4분기 물가 상승률을 각각 -0.7%, -0.2%로 예측했다. 태국 중앙은행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1.5%까지 내리면서도 “인플레이션은 낮지만 광범위한 디플레이션 징후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변수는 트럼프발 관세와 무역 갈등이다. ADB는 “미·중 무역 긴장이 재점화되면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인플레이션이 1.2%포인트 누적 하락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코노미스트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가 아시아의 저물가 추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아시아 각국에서 생산된 물건이 관세 장벽에 막혀 미국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아시아 역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가격 하락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Q5. 한국 상황은 어떤가

한국의 올해 물가 상승률은 월별로 전년 대비 1.7~2.2% 수준으로 나타나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 목표로 삼는 기준인 2%에 근접해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7월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포럼에서 “현재 인플레이션은 2%로 안정적”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중국산 수입품 가격 하락, 국내 수요 부진 등을 물가 상승이 둔화되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다만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까지는 없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달 내놓은 경제 전망에서 올해와 내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2.0%, 1.8%로 예측했다. KDI는 “유류세 및 공공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낮은 경제 성장세에 따라 수요 압력이 낮게 유지돼 물가 상승세가 다소 둔화될 전망”이라고 했다. ADB도 한국의 올해와 내년 물가 상승률을 모두 1.9%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