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인기를 끌던 비건(채식주의자) 레스토랑 ‘유니티 다이너(Unity Diner)’가 개점 6년여 만인 지난 2월 문을 닫았다. 이곳은 ‘비건 랍스터 맥앤드치즈’를 비롯해 3D(차원) 프린팅 기술과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프라임 플랭크 스테이크’ 같은 독특한 메뉴로 이름을 알렸지만, 치솟은 원재료비와 임대료를 견디지 못했다. 폐업 소식이 전해지자 단골들은 소셜미디어에 아쉬움을 쏟아냈고, 일부는 직접 가게를 찾았다. 유니티 다이너의 공동 창업자 앤디 크럼프턴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손님들이 몰려오더니 눈물을 흘리며 직원들을 껴안았다”고 했다.
한때 전 세계 식문화를 강타했던 비건 열풍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구글에서 ‘비건(vegan)’ 검색량은 2020년 1월 정점을 찍은 이후 5년 만에 60%가량 줄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체육 업체 ‘비욘드미트’의 기업 가치는 약 5년 전인 2020년 10월 120억8000만달러(약 16조8000억원)에 이르렀지만, 이후 계속된 매출 부진과 재무 건전성 우려가 겹치며 시가총액(현재 약 1억9000만달러)이 98% 증발했다. 주당 거의 200달러에 육박했던 주가도 현재 2.5달러 정도로 쪼그라든 상태다. WEEKLY BIZ는 전 세계에 불던 비건 열풍이 왜 이렇게 빠르게 쇠퇴했는지 그 배경을 짚어봤다.
◇기대감 못 채운 맛과 가격
비건 열풍이 빠르게 사그라지는 이유 중 하나는 대체육 맛의 한계가 꼽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식물성 원료나 세포 배양 기술을 활용해 만든 대체육의 맛이 동물성 고기를 완전히 대신할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실제 육류 맛을 내기 위해 대체육에 수많은 화학 첨가물이 들어간다는 논란이 일었고, 대체육 제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많다는 비판까지 겹치며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자 대체육 판매는 자꾸 줄고 있다. 배양육 개발을 지지하는 미 비영리 단체 굿 푸드 인스티튜트(GFI)는 미국의 대체육·대체 수산물 판매가 2022년 정체하다 이듬해 19% 감소했다고 밝혔다. 영국에서도 지난해(2023년 7월~2024년 6월 기준) 냉장 대체육 판매가 2년 전보다 21% 줄었다는 게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닐슨아이큐(NIQ) 집계다. 비욘드미트의 총매출도 2021년보다 30%가량 줄어든 3억2650만달러에 그쳤다.
가격 요인도 소비자들 외면을 불렀다. GFI 조사에 따르면 식물성 육류는 동물성 육류보다 평균 두 배가량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소비자 전문가 헬렌 듀드니를 인용, “많은 소비자가 비건을 포기하면서 비건 레스토랑들이 다시 육류 메뉴를 내놓고 있다”며 “대부분이 (비용 문제로) 비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 포기한다”고 전했다.
◇헬스 마니아 등은 ‘단백질 숭배’
인플루언서와 헬스 마니아들이 소셜미디어에서 단백질 섭취를 강조하는 현상도 비건 열풍 쇠퇴를 부추겼다. FT는 “비건 식단도 필수 아미노산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단백질이라 하면 고기나 달걀, 유청 단백질을 먼저 떠올린다”고 전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투워즈FNB는 고품질 단백질 수요 확대와 근육 발달에 대한 관심 증가로 올해 231억6000만달러 규모인 전 세계 동물성 단백질 시장이 2034년까지 341억8000만달러로 연평균 4.4%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채식만 고집하는 식습관이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비건 열풍을 잠재운 요인이다. 섬유질 위주의 비건 식단은 칼로리 요구량을 채우려면 더 많이 먹어야 하고, 이 경우 식욕이 적거나 영양 요구량이 높은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또한 채식주의는 육류에서 얻는 단백질과 철분, 비타민B12, 아연 등이 결핍되기 쉽다. 특히 여성은 빈혈이나 체력 저하, 탈모 등 부작용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이런 이유로 비건을 선택했던 유명인들 상당수가 다시 육식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미 건강 전문지 멘스헬스가 전했다. 은퇴한 전설의 복싱 선수 마이크 타이슨 역시 10년 동안 이어온 비건 생활을 끝내고 링 복귀를 위해 육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상주의의 퇴조 영향까지
코로나 팬데믹과 전쟁, 고물가 등 불안한 국제 정세 속에서 이상주의가 힘을 잃은 것도 비건 트렌드에 영향을 미쳤다. FT는 사람들이 신념과 같은 거대 담론보다 고기나 치즈처럼 즉각적인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음식을 찾게 됐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영국 ‘성인의 삶의 질’ 조사를 인용해 “삶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답한 비율은 24.2%에 불과했으며, 대다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이런 심리적 요인은 식습관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위안을 찾는 순간 사람들은 기름·설탕·소금이 많은 음식에 끌리는데, 이는 전형적인 비건 식단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비건에 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도 채식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키웠다. 육식을 남성성의 상징으로 보는 시선이 있는 반면, 비건은 ‘소이 보이(여성적인 남성)’ 혹은 ‘워커리(사회문제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태도)’의 영역으로 치부됐다는 게 가디언 등 주요 언론 보도다. 이 같은 분위기 속 영국 비영리단체 이팅베터(Eating Better)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의 18~24세 응답자 가운데 실제로 육류 섭취를 늘린 비율은 19%로, 섭취를 줄인 비율(16%)보다 오히려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