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아라시야마. 가쓰라강을 따라 산세가 병풍처럼 펼쳐진 이곳은 예부터 귀족들이 사계절의 변화를 눈에 담기 위해 즐겨 찾던 휴양지였다. 이곳에 있는 ‘호시노야 교토’ 리조트는 쪽배 뱃놀이나 강가 명상 같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투숙객들은 옛사람들이 그러했듯 일정 내내 어떠한 전자 기기도 사용할 수 없다. 투숙객이 온전히 자연에 녹아들 수 있도록 체크인과 동시에 호텔 측에서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각종 전자 기기를 걷고, 숙박 일정이 끝나고 나서야 돌려주는 식이다. 호텔 측은 “헤이안 시대 귀족들이 사랑한 아라시야마에서 각종 전자 기기를 내려놓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최근 이처럼 여행 중 전자 기기를 내려놓고 인터넷 사용을 중단하는 ‘디지털 디톡스(해독)’ 여행이 인기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묶인 일상에서 온전히 벗어나 진정한 해방감을 찾는 여행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상과의 단절을 꿈꾸는 여행자들
디지털 디톡스 여행은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다. ‘힐튼 2025 트렌드 보고서‘가 지난해 글로벌 성인 1만3000명에게 설문한 결과 여행 중 ’소셜미디어에 접속하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고 답한 비율은 24%에 달했다. 여행 중에 ‘업무용 연락에 답하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 ‘뉴스를 챙겨 보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고 답한 비율도 각각 25%와 20%로 집계됐다. 지인들의 소식이 올라오는 소셜미디어, 세상이 돌아가는 정보를 챙겨 보는 뉴스를 뒤로한 ’세상과 단절된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단 얘기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마치 손발처럼 달고 살아온 터라 디지털 디톡스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 이에 여행객들은 아예 디지털 디톡스에 특화된 여행지나 숙소를 찾아 나서는 추세다. 여행 전문 매체 ‘로컬스인사이더’는 최근 디지털 디톡스를 원하는 여행객들 사이에서 부탄이 인기 여행지 1위로 꼽혔다고 전했다. 매체는 “산악 지대에 위치한 부탄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보다 흡수하는 양이 더 많은 ‘탄소 네거티브’ 국가인 만큼 휴대전화 수신 상태가 나쁘고 네트워크 커버리지도 제한적”이라며 “누군가에겐 불편한 여행지일 수 있지만 디지털 디톡스를 경험한 여행객들은 오히려 여행 자체가 덜 힘들고, 스트레스도 줄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일부러 현대 기술이 닿지 않는 험지를 찾는 여행객들이 디지털 디톡스를 경험하며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영국 BBC는 “습관은 고치기 어렵고, 디지털 중독은 특히 더 그렇다”며 “디지털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고 했다.
◇‘노 와이파이’ 내세우는 호텔들
이와 같은 여행 트렌드에 발맞춰 최근엔 ‘노(No) 와이파이’ ‘노 인터넷’을 내세우는 숙박 업체들도 늘고 있다. 와이파이를 사실상 기본 서비스처럼 제공해온 대부분 숙소들과 달리 디지털 디톡스에 특화된 숙소임을 어필하는 셈이다. 국내에선 강원도 홍천에 있는 ‘힐리언스 선마을’ 리조트가 대표적이다. 이 리조트는 와이파이는커녕 일부 공간을 제외하면 전화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깊은 산속에 자리한다. 리조트 측은 이를 스마트폰을 멀리할 수 있도록 ‘의도된 불편함’이라고 홍보한다. 실제 투숙객들은 숙박 후기에 “휴대폰 없이, TV 없이 시간을 보내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곳”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등과 같은 디지털 디톡스에 관한 생생한 경험담을 남기기도 했다.
디지털 디톡스 숙소에 대한 수요는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미국 ‘미라발’ 리조트는 시설 내 공용 구역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폰 프리 존(phone free zone)’을 운영하고 있고, 멕시코의 ‘란초 라 푸에르타’ 리조트는 투숙객의 전자기기를 금고에 보관하거나 객실의 TV를 없애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뉴욕타임스는 “점점 더 많은 여행사와 숙박업체들이 여행객들의 인터넷 없이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