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오도메 소재 덴쓰 본사 빌딩 지하 1층에 있는 '애드 뮤지엄 도쿄'의 요시다 히데오 코너. 덴쓰 4대 사장을 기리는 공간이다. /애드 뮤지엄 도쿄

도쿄 시오도메 지역 일대에 1995년 재개발이 추진되며 새로운 건물들이 속속 들어섰고, 아시아 최대 광고 대행사인 덴쓰가 2002년 본사를 이곳으로 옮겼다. 덴쓰가 속한 46층 건물 지하 1·2층엔 ‘애드 뮤지엄 도쿄’라는 광고 박물관이 들어섰다. 지하 2층이 입구인데 상설 전시관의 ‘일본 광고의 역사’ 코너가 흥미롭다. 미쓰코시 백화점의 전신이자 1673년 설립된 포목점 ‘에치코야’의 창업자는 도쿄 진출 당시 경쟁자와 맞서기 위해 ‘현금 정가 판매, 박리다매’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했다. 이를 알리는 전단도 길거리에 배포했다. 비 오는 날엔 로고가 새겨진 우산을 빌려줬는데, 고객이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 자체가 ‘이동식 광고판’이 됐다. 우산엔 1~1500번까지 번호가 적혀 있어 어떤 고객이 빌려 갔는지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350년 전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실제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저서 ‘매니지먼트’에서 “마케팅은 여기서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이뿐만 아니다. 가부키 배우들을 모델로 한 전단이 등장한 대목에선 오늘날 아이돌이 광고에 등장하는 장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활자 매체에서 영상 매체로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이익 중심에서 사회적 가치 추구로 트렌드가 바뀌어온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광고들이 임팩트가 있었는지 이해하는 재미가 있었다. 마케팅에 관심이 있다면 지하 2층만 봐도 얻어갈 지식이 가득했다.

하지만 ‘요시다 히데오 코너’라고 하는 지하 1층에 있는 조그마한 공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덴쓰의 4대 사장을 기리는 공간인데, 그의 말과 이력을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현대 광고사는 요시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47년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일본 광고의 근대화를 주도했다. 미국 광고회사의 마케팅 개념을 도입하고, 광고 요금의 투명제를 실시했으며, 1951년 민영 라디오 개국, 1953년 상업 TV 개막의 흐름 속에 방송 광고 시대를 여는 데 기여했다.

그는 덴쓰 10계명이라고 불리는 ‘귀십칙(鬼十則)’을 만든 장본인이다. 10계명의 내용 하나하나가 처절하다. ‘일은 스스로 창조해야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이란 선수를 치며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수동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큰일에 도전하라, 작은 일은 너를 작게 만든다’ 등을 보면 직장 생활 하던 시절 나의 삶을 돌이켜보게 한다. ‘시작한 일은 놓지 마라, 죽어도 놓지 마라, 목적을 완수할 때까지’라거나, ‘자신감을 가져라, 자신감이 없기에 네 일에는 박력도 끈기도, 그리고 깊이조차 없다’는 문장을 보면 섬뜩하기도 하다. 살인적인 업무 강도로 인해 덴쓰 직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간혹 신문에 보도될 때면 너무 몰아치는 기업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회적 우려가 여전히 팽배하지만, 그가 생존했던 당시에는 그렇게 일하는 것이 덴쓰 스타일이었다.

그는 광고인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1947년 취임사에서 “이유야 어떻든 여태까지 광고업은 문화 수준을 낮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덴쓰는 광고업의 문화 수준을 신문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란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1963년 재직 중 사망할 때까지 포부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덴쓰는 이러한 그의 노력을 높이 기렸다. 덴쓰가 이 뮤지엄을 연 것도 1903년생인 ‘요시다 히데오 탄생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양(量)에서 질(質)로, 질에서 격(格)으로’란 말이 있다. 기업 경영에서 양적인 팽창에서 벗어나 질적 경쟁력을 갖추고, 나아가 브랜드의 격을 높여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자는 의미로 쓰인다. 요시다는 기업을 넘어 산업의 격을 갖췄다. 그래서 그는 업계의 한 획을 그은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업계의 리더라면 자기 회사뿐 아니라, 업계 전체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큰 울림을 준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