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6~8월) 한국의 전국 평균 기온은 섭씨 25.7도로, 전국에 기상 관측망이 깔린 1973년 이래 가장 뜨거운 여름으로 기록됐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 덮치면서 감자 가격은 1년 새 30%나 뛰었고, 한국은행은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이 올해 3분기(7~9월) 소비자물가를 0.3%포인트 끌어올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지도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스테판 알레가트 세계은행 수석 기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WEEKLY BIZ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미래에는 전 세계 여러 지역이 동시에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고, 이는 식량 가격에 훨씬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의 기후경제 분야 연구를 총괄하는 알레가트에게서 폭염과 기후변화가 경제와 식품 물가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들어 봤다.
◇폭염의 경제적 파장
-폭염이 전 세계 식품 가격을 끌어올리는 주요인이 될 것으로 보나.
“보통 이상 기후는 특정 지역의 농업 생산 변동에만 국한된 영향을 준다. 하지만 2018년처럼 전 세계 여러 주요 생산 지역이 동시에 폭염이나 가뭄을 겪거나 공급 충격이 병행될 때 식품 가격은 충격을 받는다. 앞으로는 기후변화로 인해 여러 생산 지역이 동시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게 높아져 가격 상승 위기가 오는 빈도가 더 잦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폭염으로 인한 물가 상승은 인류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12억명이 이미 기후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는 상태다. 농업 생산성 감소와 가격 급등으로 2030년까지 최대 1억3000만명이 극빈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도시 빈곤층은 소득의 60~70%를 식품 구입에 쓰기 때문에 가격이 10%만 올라도 치명적이다.”
-폭염에 더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이 있나.
“도시에서는 고온이 사망률 증가와 노동 생산성 저하에 직접적인 위험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인도 델리의 빈민가에서는 기온이 1도 상승하면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일 수입의 10~20%를 잃는다고 분석된다. 농촌의 경우 폭염은 노동 생산성과 동식물에 직접 악영향을 끼쳐 농업 생산량이 줄고 소득이 감소하는 피해가 나타난다. 이렇듯 영향은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다만 그 피해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가혹한 경향을 보인다. 최근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최빈국 사람들은 폭염으로 생산성의 6.2%를 잃을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고소득 국가에서는 0.2% 정도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렇다면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 그룹은 기후 억제 조치의 필요성이 적은가.
“그렇지는 않다. 선진국은 야외 육체 노동을 하는 근로자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폭염이 노동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다. 하지만 에너지 및 운송 시스템 등 인프라가 무너지거나 고령 인구가 많은 특성 때문에 저소득 국가와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 또 선진국은 고령 인구가 많아 폭염은 재앙적인 국가의 보건 시스템에 과도한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폭염을 피하는 방법
-폭염 등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방법은.
“경제 성장을 ‘탈탄소화’하는 노력을 가속화해 기온이 너무 많이, 또 너무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늦추는 게 최우선 과제다.”
-탈탄소화 전환이 오히려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지적도 있는데.
“세계은행의 연구에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75% 줄이는 경로가 현재 추세보다 더 빠른 경제 성장을 가져온다고 분석됐다. 앞으로 태양광·풍력 전환이 늘면서 전력 생산 비용 역시 줄어들 것이다. 곧 전기차도 내연기관차보다 저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등 탈탄소화의 비용 절감 잠재력이 있는 상태다. 다만 철강·시멘트·항공 운송처럼 탈탄소화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산업 분야도 있다. 이 산업들에선 단기적으로 탄소 배출 감소 노력이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는 있다. 하지만 다행히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어 합리적 비용의 대안이 제때 시장에 나오길 기대한다.”
-탄소 배출을 줄여도 기후변화 추세가 금방 바뀌진 않을 것 같은데.
“그래서 탈탄소화와 병행해 식량 생산의 기후변화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 농업 분야에 ‘적응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과 투자는 계속 늘어가는 추세다. 탄소를 줄여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비해 이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폭염 등에 적응하기 위해) 효과가 입증된 조치들을 더 널리 적용하고 확대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생산되는 작물을 (기후변화에 맞춰) 바꾸고, 고효율 관개 시스템에 투자하며, 농민들이 더 적합한 작물과 농법으로 탄력적으로 전환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흉년이 잦을 가능성이 크므로 우리는 늘 준비돼 있어야 한다. 국가 단위에서는 흉년을 대비해 견고한 식량 비축량을 확보해야 한다. (비상사태 시) 현금 지원은 흉년에 사람들이 스스로 식량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현물 식량 지원으로 보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