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다시 강단에 선 미국 앨라배마대 제시카 매독스 교수는 낯선 분위기가 갈수록 심해진다고 느낀다. 수업 시간에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이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거나 침묵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이 잦아지자 매독스 교수는 급기야 “질문에 대답 좀 하라”고 애걸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최근에서야 이 같은 학생들의 시선이 소셜미디어에서 ‘젠지 스테어(GenZ stare·Z세대의 시선)’라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미 NBC뉴스는 전했다.
최근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Z세대(1997~2012년 출생)를 상징하는 현상으로 ‘젠지 스테어’가 화제다. ‘GenZ(Z세대)’와 ‘stare(응시)‘를 합친 이 신조어는 Z세대가 다른 이들을 무표정하게 빤히 바라보는 모습을 일컫는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경험담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하나둘 올라오고 있다. 이에 WEEKLY BIZ가 지난 25~26일 SM C&C 설문 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30~50대 직장인 765명에게 ‘젠지 스테어를 경험해 본 적 있는지’ 물었다. 응답자의 과반(53.4%)은 “그렇다”고 답했다.
◇세대 갈등의 진앙
최근 이 신조어가 주목받는 건 Z세대가 직장이나 서비스업 현장에서 묻는 말에 답을 안 하거나 아무 말 없이 뚱한 표정으로 상대를 응시하는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는 증언이 이어지면서다. 틱톡에선 이미 ‘#GenZStare’란 해시태그가 달린 영상이 1만개 넘게 올라와 있다. 이 가운데에는 기성세대가 Z세대의 태도를 비꼬는 영상도 많지만, Z세대가 이 용어 자체를 모욕적이라 생각하며 반격하는 영상도 적잖다. 소셜미디어에서 이 신조어를 두고 세대 간 충돌이 벌어지는 셈이다.
기성세대는 ‘젠지 스테어’를 두고 Z세대의 대인 소통 능력 부족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불만을 표한다. 특히 대면 접촉이 많은 서비스 업종에서는 Z세대의 이런 무표정한 태도가 고객에게 무례한 인상을 줄 수 있고 이는 곧 매출과 고객 충성도로 직결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이번에 WEEKLY BIZ가 30~5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직장 내 ‘젠지 스테어’를 보이는 직원에 대한 생각을 묻자, 52.4%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세대 간 소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51%로, 중립적(33.3%), 긍정적(15.6%)이란 답변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응답자들은 젊은 직장인들이 ‘젠지 스테어’를 보이는 이유로 ‘소통 회피 및 소통 기술 부족’(26%),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방어적 태도’(24.6%) 등을 많이 꼽았다.
반면 Z세대는 멍한 표정을 짓는 이유에 대해 “소통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이없는 질문이나 상황에 반응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틱톡에서 ‘젯(Jet)’이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다메트리우스 레이섬은 조회 수 160만회를 기록한 젠지 스테어 관련 영상에서 “어떤 손님들은 정말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치즈 없는 치즈버거를 달라’거나 ‘품절이라고 뜬 상품이 있는데 혹시 창고에 더 있느냐’고도 묻는다. 우리가 젠지 스테어를 보이는 이유는 솔직히 너무 많은 손님이 그냥 너무 눈치가 없어서다”라고 했다.
◇팬데믹이 낳은 후유증?
그렇다면 왜 Z세대는 이렇게 대인 관계에서 차갑고 무표정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을까. 우선 사회적 고립 속에서 형성된 불안감의 산물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성장 과정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관계를 맺고 소통해 온 Z세대는 온라인에서 조롱이나 비난을 받을까 늘 불안해한다. 특히 팬데믹 기간 대면 소통이 급감하고 원격 수업으로 사회적 고립을 겪으면서 일부 젊은 세대는 불안 등과 같은 정신적 부작용이 한층 심화된 경향이 있다고 미 NBC는 전했다. 무표정한 얼굴 표정은 바로 이러한 불안이 표출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제스 라우크버그 시턴홀대 교수는 “끊임없는 디지털 미디어 사용이 초래하는 장기적 영향을 이제 본격적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 역시 팬데믹이 Z세대의 성향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해석한다. 조미나 HSG 휴먼솔루션그룹 조직문화연구소 소장은 “Z세대는 팬데믹을 거치며 혼밥이나 혼코노(혼자서 코인 노래방) 등에 익숙해져 관계 맺기에 낯선 측면이 있다”고 했다.
◇“기성세대의 꼬투리 잡기일 뿐”
하지만 ‘젠지 스테어’ 논란이 결국 “요즘 젊은이들은 예의가 없어”식의 세대론 반복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새로운 세대가 사회 초년생으로 진입할 때마다 기성세대의 비판은 되풀이돼 왔고, Z세대에 대한 비난 역시 밀레니얼과 X세대를 향했던 불만의 연장선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Z세대의 무례한 태도를 비판하는 X세대 역시 예전엔 ‘슬래커(slacker·나태한 세대라는 의미)’라 불리며 냉소적이고 목표 의식이 부족한 세대로 여겨진 바 있다. 젠지 스테어 논란도 결국 사회·경제·기술 변화 속에서 세대 차이를 문제 삼는 익숙한 패턴이 다시 등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직장 내에서도 Z세대를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냉소적 시선을 보내기보다는 세대 간 차이를 이해하고 젊은 세대의 장점을 살려 적합한 업무를 맡기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을 조언한다. 콘페리의 이종해 파트너는 “Z세대는 장시간 반복 업무에는 어려움을 느낄 수 있지만, 성과가 즉시 확인되거나 시의성이 있는 업무에는 강점을 보인다”며 “Z세대 스스로도 다른 세대의 경험과 시각을 존중하는 융통성을 갖춘다면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