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의균

Q: 서울에 아파트와 작은 상가를 갖고 있습니다. 자녀에게 물려줄 생각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습니다. 주변에선 빨리 물려줘야 세금을 적게 낸다는데, 또 어떤 사람은 재산을 다 물려주면 자식들이 부모 집에 잘 오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효도 계약서’라는 것을 쓰면 괜찮을까요.

A: 일부 부모들은 자녀가 재산을 다 받고 나면 혹시 자신들에게 소홀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재산을 물려주길 망설이곤 합니다. 대부분의 자녀는 재산과 상관없이 효도를 하지만, 간혹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민법에는 자녀가 부모에게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양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증여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합니다. 또 부모의 재산 상태가 크게 달라져 생활에 지장을 주게 되면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증여가 끝난 경우에는 이 규정으로 재산을 되돌려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과거엔 ‘불효자 방지법’을 만들자는 논의도 있었습니다. 자녀가 범죄를 저지르거나 효도를 하지 않으면 이미 물려준 재산도 다시 찾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지만, 아직 법으로 제정되진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효도 계약서’입니다. 민법에 따로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증여 계약을 맺을 때 조건을 붙이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매달 200만원의 생활비를 보낸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부모님을 방문한다’ 등과 같은 구체적인 조건을 정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이를 지키지 않으면 증여 계약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조건을 너무 추상적으로 쓰면 문제가 됩니다. ‘성심껏 효도한다’ 같은 표현은 실제로 지켰는지 판단하기 어려워 법적 분쟁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계약서를 쓸 땐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효도 계약서를 쓴다는 것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효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오히려 계약서를 써 두는 것이 부모와 자식 관계를 지키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광득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