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타스틱4: 새로운 출발'의 한 장면. 이번 작품은 예기치 못하게 능력을 얻어 수퍼히어로가 된 4명의 우주비행사 얘기를 담았다./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최초의 수퍼히어로 패밀리로 불리는 판타스틱4가 신작 ‘판타스틱4: 새로운 출발’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지난달 25일 북미 4125개 극장에서 개봉, 개봉 첫 주에만 1억1800만달러(약 1650억원)의 흥행 수익을 거두며 MCU의 새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기세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개봉 2주 차 성적이 첫 주 대비 66% 급락하며 4000만달러에 그친 것이다.

그래픽=김의균

한때 전 세계 영화와 드라마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수퍼히어로 명가 ‘마블’의 전성기가 저물고 있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10년 전 AP통신 인터뷰에서 “웨스턴(서부극)이 몰락했듯이 수퍼히어로 영화도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했던 예언이 적중한 것일까. 마블은 2019년작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역대 흥행 2위(28억달러) 기록을 세운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놓지 못한 채 내리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회사 월트디즈니컴퍼니가 지난 6일 발표한 회계연도 3분기 실적에서도 이런 흐름이 확인됐다. 엔터테인먼트 사업 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15% 감소했으며, 영화 사업과 직결되는 콘텐츠 판매·라이선싱·기타 부문은 2100만달러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작품 홍수에 이야기는 따로 놀아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마블이 수퍼히어로 콘텐츠를 과잉 생산하면서 오히려 대중의 피로감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마블은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을 제외하면, 이듬해부터 두 달에 한 편꼴로 신작을 쏟아냈다. 2021년엔 영화 ‘블랙 위도우’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이터널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등 4편과 TV 시리즈 ‘완다비전’ ‘팔콘과 윈터 솔져’ ‘로키’ ‘호크아이’ 등 4편을 내놓았다. 2022년엔 영화와 시리즈를 합쳐 6편, 2023년엔 8편이 공개됐다.

새로운 수퍼히어로가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스핀오프(원작에서 파생된 이야기)도 그만큼 확장됐다.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사전 학습’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예컨대 2023년 개봉한 영화 ‘더 마블스’ 속 세 캐릭터를 관객들이 이해하려면 그 전에 공개된 영화와 드라마 총 세 작품을 봐야 하는 식이다. 그러자 일부 팬들 사이에선 “마블 영화는 숙제 같다” “이번 작품은 건너뛰어도 되겠다” 등과 같은 불만이 터져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서사가 따로 놀며 혼선을 빚었다는 점이다. 드라마 ‘로키’에서 처음 등장한 빌런 ‘캉’이 영화 ‘앤트맨 3’(2023)에 난데없이 재등장하더니 기계화된 개미 떼에 패배하는 등 황당한 설정이 이어졌다. 영화 ‘블랙 위도우’(2021)는 훨씬 일찍 나왔어야 할 프리퀄(시간상 앞선 이야기를 다룬 속편)이었고, ‘이터널스’는 관객들이 이름조차 모르는 생소한 캐릭터들로 채워졌다. 지난 4월 개봉한 ‘썬더볼츠’는 지난 6~8년 동안 등장한 C급 캐릭터들을 한데 모아 놓은 수준에 불과했다.

◇사라지거나 버려진 히어로들

마블의 흥행 저조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세계관을 끌어갈 핵심 히어로들을 잃었다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 아이언맨은 숨을 거두며 퇴장했고, 캡틴 아메리카는 시간 여행으로 마지막 싸움을 한 뒤 은퇴했다. 헐크는 조연으로만 얼굴을 비춘 탓에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토르는 첫 단독 작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후 작품에서 혹평을 받으며 인기가 추락했다. 결국 ‘엔드게임’ 이후 MCU에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을 간판 캐릭터가 사라진 셈이다. 새 히어로 역시 대체 전력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샘 윌슨이 새 캡틴 아메리카로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차세대 어벤져스의 윤곽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스크린에 얼굴을 비췄지만 이후 방치된 히어로들도 마블의 골칫거리다. ‘이터널스’와 ‘샹치’ 캐릭터는 막강한 비중을 지닌 히어로로 소개됐지만, 속편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다. 과거 아이언맨·캡틴 아메리카·토르가 각각 단독 시리즈로 개별 서사를 차근차근 다진 뒤 ‘어벤져스’라는 거대 서사로 집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새로운 히어로들은 자신만의 서사를 쌓아 올릴 독립 작품조차 두 편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추억 팔이에 기댄 흥행 전략

물론 마블의 모든 작품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데드풀과 울버린’은 극장가에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두 작품이 흥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오랜 시간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 온 낯익은 캐릭터들이었다는 게 포브스의 지적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루 가필드 등 전직 스파이더맨 배우들이 함께 등장한다. ‘데드풀과 울버린’엔 크리스 에번스가 연기했던 휴먼 토치와 제니퍼 가너의 일렉트라, 블레이드 등 오랜 팬들에게 친근한 옛 캐릭터들이 대거 소환됐다.

이를 두고 전성기 MCU에 대한 향수를 자극해 관객들을 극장가로 다시 집결시키려는 전략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2026년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 둠스데이’에는 패트릭 스튜어트, 이언 매켈런 등 20세기 폭스에서 디즈니로 판권이 넘어온 ‘엑스맨’의 핵심 배우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악역 ‘닥터 둠’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미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는 “(마블의 수장) 케빈 파이기의 연락처에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이 이번 영화의 콜 시트(촬영장 일정표)에 이름을 올렸다”며 “수퍼히어로 프랜차이즈에 대한 피로감이 커졌고 타이틀 과잉 논란도 일고 있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