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진경

인공지능(AI) 대개발 시대다. 주요국 정부와 기업들은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앞다퉈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 선두는 미국. 미국은 오늘날 AI 연구를 이끌고 있을 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구글·오픈AI 등 빅테크를 앞세워 글로벌 인재들까지 공격적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연구 성과를 내고, 서비스를 개발하고, 이를 뒷받침할 인재를 모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AI 인재 ‘허브’로서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미국의 이민 정책 변화와 공공 연구개발(R&D) 예산 감축으로 외국 국적을 가진 AI 인재의 유입이 둔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 22일 ‘글로벌 AI 인재 흐름’이라는 보고서에서 “세계 AI 인재 이동과 정착 패턴이 변하고 있고, 미국 중심의 글로벌 혁신 생태계가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며 “유럽·일본 등 AI 개발 중견국에는 전략적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 인재들이 선망했던 미국

그동안 미국 주요 기업들은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해외 인재를 영입해왔다. 비자·이주 지원은 물론 최첨단 연구 설비,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제공하는 식이다. BCG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주요 기업들이 운영하는 AI 연구소 연구진의 평균 연봉은 26만7000달러(약 3억7000만원)에 이르는 반면, 미국 밖에 있는 연구소들은 13만4000달러에 그쳤다. 같은 AI 연구자라고 해도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는다면 2배 가까이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단 얘기다.

미국은 자연스레 글로벌 AI 인재의 집결지로 떠올랐다. BCG는 “지난 3년 동안 미국으로 3만2000명이 넘는 해외 AI 인재가 순유입됐다”며 “현재 미국 AI 인력의 38%가량이 비(非)미국 출신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이민 정책 변화에 발목 잡힌 미국

그러나 BCG는 그동안 탄탄했던 미국의 해외 AI 인재 유입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이민 정책이 까다로워진 데다 트럼프 정부의 R&D 예산 삭감 기조로 기업들이 기존처럼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기 어려워진 탓이다. 더구나 AI 인재 당사자들도 미국행을 주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BCG가 AI 기업 채용 담당자들에게 ‘미국 밖에 살고 있는 AI 인재가 미국의 정책 변화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나’라고 물었더니 최근 3개월 기준 ‘자주 듣는다’만 무려 33%에 달했다. ‘종종 듣는다(33%)’와 ‘드물게 듣는다(18%)’까지 더하면 채용 담당자의 84%가 해외 AI 인재로부터 미국으로 이주하는 게 걱정된다는 얘기를 들은 셈이다. BCG는 “채용 둔화, 이민 정책 강화 등으로 인해 미국의 AI 인재 유입은 지난 2년 동안 감소세를 보였다”며 “트럼프의 2026년 예산안이 실행될 경우 미국 대학 연구 자금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미 국립과학재단(NSF)과 국립보건원(NIH)의 예산이 각각 56%, 40% 감축돼 AI 기초 연구 생태계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민 단속 말라” 美 LA 이어 뉴욕으로 번진 시위 - 지난 10일 미국 뉴욕의 한 연방정부 기관 건물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법 이주자 단속 및 추방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지난 6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된 시위는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시카고 등 미국의 다른 주요 대도시로 확산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AI 연구 후발 주자들에겐 기회”

그러나 이 같은 미국의 AI 인재 유입세 둔화는 AI 시장의 후발 주자들에겐 되레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미국의 AI 인재 영입 규모가 줄자, 주요국들은 틈새시장 공략에 나선 모양새다. BCG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향후 2년 동안 해외 인재 유치에 5억8500만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특히 프랑스는 미국의 AI 연구 인력을 뺏어오기 위해 1억달러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고, 영국은 7000만달러 규모의 연구자 모집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BCG 코리아의 AI&디지털 대표인 장진석 MD파트너는 “지금 한국은 글로벌 인재 흐름의 변화를 활용해 AI 인재 전략을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라며 “정부는 해외 인재 유출을 최소화하고 글로벌 인재를 유입할 수 있는 정책 기반을 마련하고, 기업은 ‘수퍼스타’ 인재가 아니라 A급 팀을 키울 수 있는 체계적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