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의균·CGIG

“세계 6대륙을 전부 비행하면 100만 마일리지를 드립니다.”

언뜻 황당해 보이는 이 같은 제안이 지난달 터키항공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자사 항공편을 이용해 4개월 안에 전 세계 6개 대륙을 전부 여행하는 회원에게 100만 마일리지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용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항공권 최소 1만달러(약 1400만원)어치에 해당하는 마일리지를 적립해주겠다는 것이다. 항공사 마일리지는 거리, 좌석 등급 등에 비례해 항공권 구매 액수의 일부가 적립되는 방식인데, 이번 이벤트는 파격적 혜택을 제시한 셈이다. 이에 여행 마니아층 ‘여행 덕후’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고, 온라인에선 최적의 가성비 경로를 짜는 스터디까지 구성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스칸디나비아항공의 '마일리지 런' 이벤트에 참가해 목표를 달성한 한 중국인 참가자가 온라인상에 인증한 티켓들. /X

최근 이처럼 글로벌 항공사들이 일종의 ‘마일리지 런(Mileage Run)’ 방식의 대규모 이벤트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마일리지 런이란 본래 여행 자체보단 마일리지를 쌓아 상급 회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항공편을 일부러 이용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최근 들어 항공사들이 이를 마케팅 방식으로 이용해 고객 유치와 홍보에 나서고 있다.

그래픽=김의균

◇마일리지 런 마케팅 나선 항공사들

글로벌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런’을 앞세워 이색 마케팅을 벌이는 사례는 하나둘 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에티하드항공은 지난 5월 말부터 1년 동안 신규 취항 15개 도시에 가장 먼저 모두 날아간 승객에게 보너스 500만 마일을, 2등과 3등에게는 각각 300만, 100만 마일을 주는 내용의 이벤트를 공지했다.

아프리카 최대 항공사인 에티오피아항공도 비슷한 이벤트를 선보였다. 지난달부터 11월 말까지 에티오피아항공이 새로 취항한 국제선 4개 노선을 포함해 총 5차례 국제선을 왕복한 상위 5명에게 각각 20만 보너스 마일을 증정한다.

미국 저비용 항공사(LCC)인 제트블루도 창사 25주년을 맞아 마일리지 챌린지를 내놨다. 지난달 25일부터 연말까지 자사 취항지 25곳을 방문한 고객에게 35만 포인트와 25년 동안 엘리트 회원 등급 자격을 제공하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15곳, 20곳 방문 시에도 각각 15만, 20만 포인트를 주는 계단식 보너스 구조로 설계됐다.

◇스칸디나비아항공의 성공 추종

이 같은 항공사들의 ‘마일리지 런’ 이벤트 열풍의 시작은 지난해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의 성공에서 비롯됐다. SAS는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동안 스카이팀 소속 15개 항공사 노선을 모두 이용한 고객에게 100만 마일을 제공하는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실시했다. SAS가 소속한 항공 동맹을 27년 만에 스타얼라이언스에서 스카이팀으로 변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당초 예상보다 많은 32국에서 5만여 명이 도전에 나섰고, 최종 약 900명이 조건을 전부 달성해 ‘마일리지 백만장자’가 됐다.

총 수백억 원 상당의 마일리지를 지급하게 됐지만 항공사는 엄청난 홍보 효과를 봤다. 애런 백스트롬 SAS 부사장은 “우리는 세상 끝자락에 있는 아주 작은 항공사지만 노이즈를 일으킬 만큼 크게 벌이자는 취지로 이벤트를 시행했다”며 자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이었다고 평가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을 기반으로 하는 SAS가 세계적으로 알려질 기회가 됐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이벤트를 통해 항공사들은 고객 대상 ‘록인(lock-in·자물쇠)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다. SAS의 챌린지에 성공한 900명 중 대부분은 스칸디나비아 지역 외부에 살며 60%가 북미, 동북아 출신이다. 그간 굳이 SAS를 이용할 이유가 없던 고객들을 유입시키고 마일리지를 통해 충성 고객으로 만드는 효과가 생긴 것이다. 마일리지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포인트패스 창립자 줄리언 킬은 워싱턴포스트에 “이 같은 프로모션은 도전자들에게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성공할 경우 인상적인 보상을 준다”며 “항공사들이 기발한 마케팅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작은 거창했지만

그러나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런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비용 부담이 커지고 기대 이상의 참여자가 몰리면서, 조기 종료되거나 보상 규모가 줄어드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터키항공은 ‘세계 6대륙 여행 시 100만 마일 지급’ 이벤트에 기대 이상의 참여자가 몰리자 행사 시작 2주 만인 지난 8일 조기 종료했다. 에티하드항공은 애초 상위 3명에게만 최대 500만 마일을 지급하기로 했다가, “참여 장벽이 너무 높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조건을 완화하고 보상을 확대했다. 현재는 15개 신규 취항지 중 5곳을 가장 먼저 여행한 100명에게 2만5000마일, 10곳을 여행한 100명에게 10만 마일을 제공하는 등 보상 규모를 다수 참가자에게 분산하는 방향으로 조정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