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도쿄에 갈 때면 아자부다이힐스를 찾곤 한다. 2023년 11월 오픈 당시만큼의 인기는 꺾였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매장이 보여 여전히 흥미롭다. 이곳의 매장은 크게 타워 플라자동과 가든 플라자 A·B·C·D동으로 나뉜다. 지하철에서 내려 중심부로 가려면 가든 플라자 A·B·C동을 지나게 된다. 타워 플라자 동엔 고급 식당과 서점이 있다. 가든 플라자 D동은 거의 갈 일이 없다. 그러던 중 우연히 D동을 둘러보다 피자포피스(Pizza 4P’s)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점포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피자포피스의 창업자는 마스코 요스케(益子陽介)다. 하지만 이 브랜드를 잘 아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 흥미로운 점은 베트남을 여행해 본 한국인들 사이에선 꽤 알려진 브랜드란 것이다. 그렇다. 피자포피스는 일본인이 베트남에 창업해 성공한 이탈리안 음식점이다.
마스코는 ‘사이버 에이전트’라는 인터넷 광고와 게임 사업을 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막연히 ‘해외에서 창업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2008년 회사에서 베트남 파견 희망자를 모집하자 바로 손을 들었다. 그리하여 베트남은 그가 가장 잘 아는 해외 지역이 됐다. 물론 처음부터 베트남만을 창업 후보지로 생각했던 건 아니다. 싱가포르, 태국, 유럽 등 여러 나라를 검토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저축액은 1000만엔가량, 그중 절반을 초기 투자금으로 잡자 결국 물가가 저렴하고 본인이 잘 아는 베트남이 현실적인 선택지였다.
그렇다면 왜 하필 피자를 창업 아이템으로 선택했을까. 2000년대 초반 그의 친구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마스코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우울증에 빠졌다. 그러던 중 2006년 동료들과 제대로 된 피자 파티를 열어 보자며 집 뒤뜰에 화덕을 만들기 시작했고, 무려 6개월에 걸쳐 완성했다. 이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갓 구운 피자를 먹으며 동료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 속에서 그는 서서히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에게 피자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삶의 동아줄 같은 존재였다. 2011년 호찌민에 피자포피스 1호점을 열게 된 배경엔 이런 사연이 깔려 있다.
베트남 피자 시장은 피자헛 등 5개 브랜드가 강세다. 피자포피스를 제외한 나머지는 일반적인 피자 가게인 반면, 피자포피스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포지셔닝했다. 이탈리아 본고장의 피자 맛을 살리면서도 일본과 베트남식 토핑을 가미했고, 인테리어는 유럽풍으로 꾸몄다. 베트남 물가에 비해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남녀 둘이 피자, 샐러드, 파스타, 음료 두 잔을 시키면 보통 80만~100만동, 우리 돈으로 약 4만~5만원이 나온다. 그럼에도 다낭의 인도차이나 리버사이드 타워 2층에 위치한 피자포피스에서 한강(다낭에도 ‘한강’이 있다) 야경을 바라보며 데이트하는 것은 베트남 젊은이들 사이 로망이다.
피자포피스의 비전은 ‘평화를 위해 세상이 웃음 짓게 하자’이고, 미션은 ‘놀라움의 전달을 통한 행복 나눔’이다. 언뜻 보면 피자 가게치고는 다소 거창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마스코의 창업 동기를 보면 수긍이 간다. 이러한 거창한 비전과 미션이 있었기에 사업 초기의 경험 부족, 코로나의 충격 같은 위기도 이겨낼 수 있었다. 피자포피스는 2015년 2호점을 연 뒤 현재는 베트남 5개 도시에 걸쳐 35개 매장으로 확장됐고, 2018년부터는 해외로도 눈을 돌렸다.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캄보디아, 인도에 이어 일본에도 아자부다이 힐스 개관 시 입점하게 된 것이다.
매장이 한 곳이라면 내가 잘하면 된다. 여러 곳이라면 점장과 점포 인력의 관리가 중요하다. 매뉴얼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꼼꼼히 살피는 것도 필요하지만, 비전과 미션을 공유하고, 현장에 자율성을 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 비전과 미션을 공유할 수 없는 인력이라면 처음부터 뽑지 않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