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가 발간한 '도쿄의 일본 정원 2023' 한국어판 책자. 총 29개소 정원을 소개한다. /도쿄도

도쿄에서 방문할 만한 일본 정원은 몇 곳이나 될까. 일본에서 손꼽히는 3대 정원은 가나자와의 겐로쿠엔, 오카야마의 고라쿠엔, 미토의 가이라쿠엔이다. 도쿄에는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매력을 지닌 정원이 적지 않다.

가나자와 겐로쿠엔은 일본 3대 정원중 하나다.

‘하마리큐 온시 정원’은 바닷물을 끌어들여 조성한 연못, 쇼군의 사냥터, 천황이 도쿄도에 하사한 장소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어 흥미롭다. 프랑스 정원, 영국 정원, 일본 정원 등 나라별 다양한 정원 양식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신주쿠교엔’도 빼놓을 수 없다. 미술관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도쿄도 정원 미술관’ ‘네즈 미술관’ ‘롯폰기 힐스의 모리 정원’도 훌륭하다. 얼핏 손꼽아도 다섯 곳이다. 물론 실제로는 그보다 많을 것이다.

도쿄도는 ‘도쿄의 일본 정원 2023’이란 책자를 통해 총 29곳의 정원을 소개하고 있다. 살펴보니, 블루보틀의 일본 첫 매장을 관람할 때 이미 방문했던 ‘기요스미 정원’도 있고, 강사로 나서 강의를 했던 장소인 ‘핫포엔’도 있다. 다녀온 곳이 꽤 된다. 언젠가는 전부 다 방문해 보고 싶다는, 즉 ‘도장 깨기’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장 깨기’는 게임의 일종이다. 시작은 어려워도 중반을 지나면 끝을 보고 싶어진다. 성취감을 느끼며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전략적 소문 분야의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조나 버거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게임 메커니즘을 소문 전략에 활용하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성취한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자랑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깬 도장이 자연스레 언급되고, 그만큼 소문도 확산된다는 것이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는 2013년 ‘100대 명산’을 선정했는데, 어느새 도전하는 사람이 늘었고, 10년이 지난 2023년에는 1만2500명이 넘는 사람이 완주했다고 한다. 그만큼 블랙야크는 소문이 났고, 브랜드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방문할 만한 일본 정원 29곳’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겨냥해, 도쿄도는 2017년 ‘오래된 도쿄와 새로운 도쿄의 만남(Tokyo Tokyo Old meets New)’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에도 시대부터 400년 전통을 이어오면서도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혁신하는 도시, 도쿄. 이곳에서 활력과 매력을 느껴보라는 뜻이다. 그 일환으로 도쿄도 건설국 공원녹지부는 ‘도쿄의 일본 정원 손님맞이 협의회’를 조성했다. 그러고는 ‘도쿄의 일본 정원’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하네다공항 국제선 입국장, 도쿄도청 본사, 신주쿠 고속버스 터미널 등에 비치했다. 일본어, 영어, 중국어(간체·번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PDF 버전을 인터넷에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온·오프라인을 연계해 열심히 홍보하고 있는 셈이다.

책자를 펼치면 가장 먼저 교통 지도가 나온다. 1번부터 29번까지 숫자가 JR이나 지하철역 이름 옆에 표기되어 있다. 도쿄도정원미술관은 10번 정원인데, 메구로역 위에 ‘10’이란 숫자가 쓰여 있다. 이 정원이 소개된 페이지를 펼치면 역에서 정원까지 지도와 소요 시간은 물론, 정원의 배치도와 볼거리가 상세히 소개돼 있다.

이제 관광객은 막연히 ‘정원에 한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에서 ‘이번에는 5번과 10번 정원을 방문해서, 총 29곳 중 16곳까지 도장 깨기를 완수해야지’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게 된다. 게임 메커니즘을 활용해 방문 횟수도 늘리고, 소문도 퍼뜨린 셈이다. 게임에 참여하는 고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온·오프라인을 연계해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한다. 도쿄의 일본 정원은 이 공식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의 관광, 유통, 문화, 교육 등 수많은 산업 분야에서도 이러한 공식을 응용한다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