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입 항공기에 붙는 관세를 낼 생각이 없습니다. 이는 델타항공의 매우 강경한 입장입니다. 이런 관세는 결국 미국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해를 끼칠 뿐입니다.”
에드 배스천 델타항공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일 2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델타항공은 유럽에 본사를 둔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에서 항공기를 들여오고 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지난 4월부터 외국산 항공기에 10%의 관세를 부과하자, 델타항공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배스천 CEO는 지난 1분기 실적 발표에서도 “관세가 붙는 항공기 인도는 모두 연기하겠다”며 사실상 관세 회피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그렇다면 글로벌 최대 항공사인 델타항공은 정말 관세의 충격을 비켜 갈 수 있을까. 델타항공이 이날 발표한 2분기(4~6월) 실적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델타는 해당 분기에 총 166억5000만달러(약 23조2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166억6000만달러)와 유사한 수준이다. 순이익은 같은 기간 63% 급증한 21억3000만달러에 달했다. 주당순이익(EPS) 역시 2.10달러로 시장 전망치(2.05달러)를 웃돌았다. WEEKLY BIZ는 델타항공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최근 제출한 분기 실적 보고서와 실적 발표회 발언 등을 통해 델타항공의 실적 선방 배경과 향후 전망을 살펴봤다.
◇암울한 전망 딛고 ‘깜짝 실적’
이날 실적 발표회에서 배스천 CEO는 “(델타항공이) 창립 100주년을 맞이해, 올 상반기에 역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도 탄탄한 재무 성과와 운영 실적을 달성했다”며 “2분기에 델타항공은 13% 영업이익률로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고, 주요 운영 지표에서도 업계를 선도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과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에서 거둔 실적이라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불과 석 달 전인 지난 4월 델타항공은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세계 무역을 둘러싼 광범위한 불확실성으로 성장이 크게 정체됐다”며 연간 실적 가이던스(전망)를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2분기 실적 보고서에선 “사업에 대한 확신을 반영해 연간 EPS 5.25~6.25달러, 잉여현금흐름은 30억~40억달러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과 3개월 만에 자신감을 되찾은 셈이다.
◇국제선·프리미엄 항공권이 실적 견인
델타항공이 실적 반등의 주역으로 지목한 건 프리미엄 항공권과 국제선 판매다. 델타항공은 차별화된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층을 위해 ‘델타 원’과 ‘델타 프리미엄 셀렉트’ 등 프리미엄 좌석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가령 델타 원은 장거리 노선에서 180도까지 눕힐 수 있는 침대형 좌석과 함께 고급 기내식과 스킨케어 제품 등을 제공한다. 델타항공은 “프리미엄 좌석 매출은 전년 대비 5% 증가하며 일반석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일반 항공권 판매는 5% 줄어들었지만, 단가와 마진이 높은 프리미엄 항공권 덕분에 실적 방어에 성공한 셈이다.
국제선 매출도 한몫했다. 여름 성수기를 맞은 국제선 수요가 국내선 판매 부진을 상쇄한 것이다. 델타항공은 “이번 분기 국제선 매출은 2% 증가했으며, 특히 태평양 지역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1% 늘어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반면 국내선 매출은 같은 기간 5% 줄었다.
프리미엄·국제선 항공권은 가격대가 높은 만큼 이번 호실적은 미국 내 고소득층과 중산층의 소비 심리 회복이 주된 배경이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배스천 CEO도 이날 “우리의 타깃 소비층은 연 소득 10만달러 이상인 가구로, 미국 전체 가구의 40%에 해당한다”며 “이들은 올해 초 시장 상황에 우려했지만 우려는 자연스럽게 해소됐고, 소비자신뢰지수도 역시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올여름 실적, 기대치 웃돌 것”
델타항공은 2분기에 보인 성과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이라 자신했다. 이날 글렌 윌리엄 하우엔스타인 델타항공 사장은 “장거리 국제선은 여름 성수기에 접어들면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매출 측면에서 3분기보다 4분기 실적이 더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선 예약도 가을쯤에는 다시 성장세로 전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모든 예약 상황은 긍정적인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특히 델타항공의 ‘효자 상품’인 프리미엄 항공권의 인기는 향후 실적 전망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하우엔스타인 사장은 “델타항공은 프리미엄 좌석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고객층을 중심으로 수익이 크게 늘고 있다”며 “사우스웨스트항공 등 일부 항공사가 이제야 라운지 클럽을 만들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는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델타항공은 프리미엄 고객을 위한 공항 라운지에서 미슐랭 셰프의 요리, 전신 안마 의자, 시그니처 칵테일 등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며 충성 고객층을 공략하고 있다.
◇미 항공업계 전반에 번지는 기대
이날 미 항공사 중 올해 2분기 실적을 처음 발표한 델타항공이 좋은 실적과 함께 낙관적인 전망을 쏟아내자 시장에선 항공업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실적 발표 당일인 지난 10일 델타항공 주가는 12% 급등했으며, 유나이티드항공(14%), 아메리칸항공(12%), 사우스웨스트항공(8%) 등 다른 대형 항공사 주가도 일제히 강세를 나타냈다.
델타항공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담긴 대규모 감세안의 경기 부양 효과가 항공 수요 확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배스천 CEO는 “감세안 시행과 함께 관세 불확실성도 완화되고 있다”며 “90일 전보다 경제 상황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졌다”고 했다. 그는 이어 “소비자와 기업이 점차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으며, 하반기에는 수요가 더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은 여전히 리스크
그러나 낙관적인 실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델타항공의 실적 보고서 곳곳에선 여전히 우려의 기류가 감지된다. 사실 델타항공은 지난 1월 전년도 4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올해 연간 EPS로 7.35달러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2분기 실적 발표에선 이를 5.25~6.25달러로 낮췄다. 기업의 수익 창출 능력의 가늠자로 여겨지는 EPS를 최대 29%가량 하향 조정한 셈이다. 더구나 여행 수요를 억눌렀던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이라는 ‘먹구름’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대표적으로 출장 수요는 여전히 부진한 상황이다. 배스천 CEO는 이날 “출장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어떤 회사든 출장의 15~20%를 줄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히 그는 이날 “전반적으로 보면 좋은 여름이 될 것”이라면서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가 바랐던 만큼 좋은 여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좋은 여름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