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더위가 불편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어릴 적 자주 들었던 말은 차 조심하라는 말이었지, 더위 조심하라는 말은 어르신들에게 건네는 덕담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박사 과정에서 최신 연구들을 접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어리다고, 젊다고 해서 더위의 영향이 적은 건 아니다. 오히려 누적된 부작용은 더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운 날씨는 청소년들의 학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박지성 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연구팀이 2020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더운 날 수업 일수가 많아질수록 학생들의 시험 성적은 낮아졌다. 2001~2014년 미국 고등학생 약 1000만명의 PSAT(대학예비시험) 성적과 지역별 일일 기온 데이터를 비교해 고온이 학업에 미치는 영향의 인과관계를 규명했다. 해당 논문은 최고 경제 학술지인 아메리칸 이코노믹 저널에 게재됐다.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섭씨 32~37도인 날에 수업을 하루 더 받으면 연간 학습 성취도가 평균 0.16% 줄어들었다. 날씨가 더 더워지면 그 영향은 더욱 심각했다. 기온이 37.8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부정적 영향은 최대 50% 이상 상승했다.
중요한 점은 이 영향이 단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시험일 기준으로 2~4년 전 더운 날 수업일수도 성적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러 학년에 걸쳐 더위가 반복되면 그 누적 효과는 단일 학년의 충격보다 훨씬 컸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조현국 영남대 교수가 2017년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수능 수험생이 그해 여름 경험한 폭염 일수(일 최고기온 34도 이상)가 많을수록 수능 수학·영어 영역 성적이 하락했으며, 이전 해 여름 기온도 다음 해 시험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고온 환경은 인간의 정서뿐 아니라 인지 능력과 판단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는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실험실 환경에서 검증된 사실이다. 특히 성장기 아동·청소년은 높은 대사율과 체중 대비 낮은 표면적 비율, 아직 덜 발달된 신경 인지 기능으로 인해 열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행히 실내 온도를 적절히 유지하면 이런 더위의 부정적 효과가 완화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에어컨 보급률을 자랑하기에 걱정이 비교적 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 가정 청소년들에게는 더위 그 자체가 또 다른 교육 불평등 요인이 될까 봐 우려된다.
또, 청소년이 아니라고 방심할 수는 없다. 건강 문제뿐 아니라 갈수록 더워지는 기후로 인해 보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높을수록 사람의 공격성도 증가해 사회 범죄율이 증가한다고 알려졌다. 더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더운 날씨에 땀 뻘뻘 흘리며 놀다 온 아이를 보고 마냥 흐뭇해할 일이 아니다. 이제 더위 조심하라는 말을 ‘모든 세대’에게 진지한 덕담으로 건넬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