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뉴욕에서 페덱스 직원들이 화물 트럭에서 운송품을 내리고 있다. 지난달 24일 연간 실적을 발표한 페덱스는 불확실한 무역 환경 탓에 13년 만에 향후 1년 동안의 매출 전망치를 제시하지 못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픽=김의균

“지금은 예측하지 않겠습니다.”

라지 수브라마니암 페덱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4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2025 회계연도(2024년 6월~2025년 5월)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무역 전망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의 고율 관세 등 무역 장벽이 장기화할 경우 페덱스는 어떻게 대응할지 설명해 달라”고 하자 “앞으로 30일에서 60일, 심지어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이날 페덱스는 4분기(지난 3~5월) 실적과 함께 2025 회계연도 전체 실적을 발표하며 “지난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 늘었다”고 밝혔다. 연간 영업이익도 61억달러(약 8조4000억원)를 거둬들여 “안정적 성과”라고 자평했다. 주주 환원에 대한 약속도 지켰고, 향후 보다 주주 친화적인 경영을 이어가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했다. 이날 페덱스 주가는 장중 5% 넘게 급락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날 페덱스가 향후 1년의 매출 가이던스(전망치)를 발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6 회계연도 1분기(2025년 6~8월) 주당순이익(EPS) 전망치(2.90~3.50달러)도 시장의 예상을 밑돌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촉발한 관세 전쟁이 낳은 불확실성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WEEKLY BIZ는 페덱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최근 제출한 분기 실적 보고서와 실적 발표 자료, 실적 발표회 발언 등을 통해 불확실한 글로벌 무역 환경에 대한 페덱스의 생각과 대응 방안 등을 살펴봤다.

그래픽=김의균

◇13년 만에 가이던스 못 낸 페덱스

페덱스가 향후 1년 동안의 매출 전망치를 내놓지 못한 것은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을 제외하면 13년 만이다. SEC 규정상 기업이 가이던스를 발표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페덱스가 이례적으로 가이던스를 제시하지 않으며 시장엔 부정적 신호를 줬다. 앞서 페덱스가 가이던스를 발표하지 않았던 때는 2012년 유로존 위기 등으로 글로벌 경제가 극도로 불안정했을 시기였다. 수브라마니암 CEO는 “앞으로 30~60일 안에 무역 환경이 바뀔 것으로 예상한다”며 “그 시점이 되면 보다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만 했다.

실적 자체는 양호한 편이었다. 연결 기준 2025 회계연도 주당순이익(EPS)은 18.19달러로 2년 연속 증가했고, 4분기 매출도 222억달러를 기록하며 시장 기대를 웃돌았다. 이는 장기화하는 화물 운송 경기 부진, 영업일수 감소, 미국 연방 우정국(USPS) 계약 만료, 기상이변이라는 다양한 악재 속에서 거둔 실적이었다.

하지만 실적 발표 직후 오히려 주가는 장중 5% 넘게 빠지는 등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페덱스 주가는 이후 다소 회복했지만 9일 기준 연초 대비 13.77% 하락한 상태다. 벤치마크인 S&P500 지수가 올해 6.73% 상승한 것과 대비된다. 이번 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미·중 간 수출이 연결 매출의 약 2.5%를 차지하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강조했지만,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이 실적 전망을 제약하며 시장 불안감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주주 환원에도 식지 않은 불안감

페덱스는 지난해 43억달러를 주주에게 환원하며 역대 최고 수준의 자본 정책을 실행했다고 밝혔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를 통해 주주 친화 경영 기조를 강화한 것이다. 존 디트리히 페덱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자본 집약도를 낮춘 덕에 예상보다 큰 폭의 가치를 주주들에게 돌려줄 수 있어 기쁘다”며 “앞으로도 주주 환원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페덱스는 지난 1년 동안 자사주를 총 30억달러어치 매입했고, 배당금도 13억달러를 지급했다. 또 향후 1년 동안 배당금을 5% 인상해 5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갈 계획이다. 하지만 글로벌 무역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주주 환원 이상의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역장벽 속 유연한 항로 재편

위기를 맞은 페덱스는 최근 글로벌 무역 흐름 변화에 대응해 주요 항공·물류 네트워크를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미·중 관세 갈등의 직격탄을 맞은 아시아~북미 노선의 공급량을 대폭 줄였다. 페덱스에 따르면 지난 5월 한 달 동안 해당 노선의 공급은 4월 대비 35% 이상 감축됐다. 이 같은 조정에 대해 페덱스 측은 “지난 4월 2일 미국 정부의 상호 관세 발표 이후 급감한 중국발 물량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덱스는 아시아 내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여러 지역 거점을 통합해 하나의 ‘허브’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직항 노선을 추가 개설해 동남아 지역의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있다. 수브라마니암 CEO는 “수요 변화에 따라 아시아발 유럽행, 아시아발 중남미행 노선의 공급 전략도 재정비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브리 케레레 고객총괄책임자(CCO)도 “현재 매출은 비교적 작지만 인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은 크다”며 “수익성과 장기 전략을 감안한 노선 다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헬스케어·자동차·중소기업 공략 강화

페덱스는 이번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향후 사업 전략의 핵심 축으로 B2B(기업 간 거래) 부문을 제시했다. 특히 약품 운송을 포함한 헬스케어 분야처럼 수량·무게·부피 대비 수익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영역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1년 동안 헬스케어 부문의 매출은 총 90억달러로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올렸다. 케레레 CCO는 “복잡해지고 규제가 강화되는 제약 산업의 요구에 맞춰 강력한 품질 관리 속에 물류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헬스케어와 함께 마진율이 높은 또 다른 전략 시장은 북미 자동차 공급망이다. 이를 위해 페덱스는 최근 자동차 전담 운송 사업부를 신설했으며, 북미 시장 내에서만 연간 10억달러 규모의 신규 수익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중소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실적에 따라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페덱스 리워드’ 가입자 수는 전년 대비 8% 늘었다. 페덱스 측은 중소기업 고객 기반 확대를 통해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경쟁사 UPS도 고전

페덱스의 주가가 올 들어 연초 대비 13% 넘게 하락한 가운데 최대 경쟁사인 UPS 상황도 녹록지 않은 편이다. 올 들어 UPS 주가는 17.53% 하락하며 페덱스보다 더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 여파로 국제 배송 물량이 위축된 UPS는 미국 국내 시장 악재까지 겹쳤다. 올해 초 UPS는 전체 매출의 약 12%를 차지하던 최대 고객사인 아마존과의 거래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수익성이 낮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4월에는 인력 2만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 UPS의 올해 1분기 미국 내 일일 평균 택배 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3.5% 감소하며 경기 둔화의 충격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