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제작이 피자 주문만큼이나 쉬워질 겁니다.”
2016년 영국 런던에서 앱 개발 스타트업 ‘빌더 AI’가 첫걸음을 내디뎠을 당시 창업자 사친 데브 두갈이 내비쳤던 포부입니다. 그는 “인공지능(AI)의 힘으로 누구나 맞춤형 앱을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호언장담했고, 실제로 ‘나타샤(Natasha)’란 AI를 내세워 고객들이 제작 요청하는 앱을 뚝딱 만들어 냈습니다.
시장은 열광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뱅크, 딥코어, 카타르 투자청 등이 빌더 AI에 투자한 금액은 무려 4억5000만달러(약 6100억원)에 달합니다. 전성기 시절 빌더 AI의 기업 가치는 15억달러에 육박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블룸버그 등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빌더 AI가 핵심 기술이라 주장한 ‘AI 맞춤형 앱 제작’은 모두 허상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인도인 개발자 700여 명이 현지에서 수작업으로 코딩을 하고, 그 결과물을 고객에게 전달하며 ‘AI가 만든 작품’이라 속였던 겁니다. 결국 빌더 AI는 지난 5월부로 파산 절차를 밟기에 이릅니다.
특별할 것 없는 수작업을 AI 기술이라 포장해 마케팅하다 논란에 휩싸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아마존이 2016년 내놓은 완전 무인 매장 ‘아마존 고’는 직원은커녕 셀프 계산대도 없이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들고 나가기만 하면 AI 시스템에 기반한 센서 수천 개가 자동 결제를 해 준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AI보다는 인도인 직원 1000여 명이 카메라를 통해 일일이 상품 라벨을 보고 물건을 파악하는 ‘수동 작업’이 결제의 핵심이었습니다.
미국 뉴욕남부연방검찰청(SDNY)은 온라인 AI 쇼핑 앱 ‘네이트’의 창업자 앨버트 새니저를 사기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습니다. 네이트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 사진을 메시지로 보내기만 하면 AI가 자동으로 그에 맞는 상품을 찾아주는 기능을 제공해 화제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에 따르면 실제로는 필리핀에 자리 잡은 콜센터에서 인간 수백 명이 수작업으로 구매를 처리했다 합니다. 그 밖에도 2023년 ‘AI 드라이브스루 소프트웨어’로 주목받았던 미국 AI 기업인 프레스토오토메이션의 서비스는 사실상 인간 수작업을 통해 구동했다고 밝혀졌고, AI 기반 자동 판결 분석 서비스를 내세운 법률 기술 스타트업 이븐업에서 업무 중 태반은 인간이 맡아서 한 것으로 드러났던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AI 자동화’를 표방하는 기업이 실제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호림 동양대 AI융합연구센터장은 “제3세계 아웃소싱을 포함하면 아직도 인건비 집행이 AI를 쓰는 효율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며 “AI 기업에 업무를 맡기거나 투자를 집행할 때 그들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파악해 해당 기업이 주장하는 수준의 기술력을 정말로 보유했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