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관세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트럼프가 세계 각국에 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글로벌 무역량이 쪼그라들고, 세계 경제 성장도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더구나 트럼프가 조만간 무역 상대국에 관세율을 명시한 서한을 발송하겠다고 밝히면서 파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관세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어느 수준일까. 세계은행은 지난달 ‘세계경제전망(Global Economic Prospects)’ 보고서를 통해 “무역 긴장 고조와 정책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있던)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세계은행은) 올해 전 세계 경제 주체의 70%에 대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2.3%
세계은행은 이번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2.3%로 전망했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가 서서히 식는 ‘소프트랜딩(연착륙)’을 예상하며 연간 성장률을 2.8%로 제시했지만, 6개월 만에 0.5%포인트나 하향 조정한 셈이다. 세계은행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는 안정화 흐름을 보이고 있었지만, 무역 갈등을 비롯한 국제적인 불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빈곤을 줄이고 번영을 키워온 정책적 확실성을 뒤엎었다”며 “올해 성장률은 경제 위기가 있던 해를 제외하면 지난 17년 동안 가장 낮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세계은행은 경제 충격이 올해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과 2027년 세계 경제성장률도 각각 2.4%, 2.5%에 그칠 전망이다. 전망이 현실화되면 2020년대(2027년까지)의 글로벌 평균 성장률은 196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세계은행 예상이다.
특히 세계은행은 관세 전쟁과 글로벌 지정학적 갈등이 일으킬 경제적 충격파의 주요 피해자로 개발도상국을 지목했다. 세계은행은 “고소득 국가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기존 예측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보이지만, 저소득 개발도상국은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개발도상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2000년대 5.9%, 2010년대 5.1%였지만, 2020년대엔 3.7%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란 게 세계은행 분석이다. 신흥국 경제 성장세가 둔화된다는 의미다.
◇무역이 발목 잡은 성장
세계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는 글로벌 무역 위축이 지목됐다. 인더밋 길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개발도상국의 성장률은 지난 30년 동안 뚜렷한 하락세를 보여왔다”며 “이는 글로벌 무역 성장률의 둔화 추세와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세계 경제성장률이 하락세에 접어든 지난 30년 동안 글로벌 무역 증가율도 함께 줄었다. 2000년대 5.1%였던 무역 증가율은 2010년대 4.6%, 2020년대 들어서는 2.6%로 주저앉았다. 세계 경제 성장률이 글로벌 무역량 추이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온 만큼 관세 전쟁발(發) 글로벌 무역 위축에 따른 경제 성장률 둔화는 예정된 수순이란 평가다.
실제로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앞으로 경제 성장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세계은행은 이번 보고서에서 “올해는 동아시아·태평양, 유럽 등 글로벌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지역의 개발도상국들이 성장 부진을 겪게 될 것”이라며 “특히 무역 장벽이 높고 (원자재·농산물 등의) 수출에 의존하는 구조적인 약점이 있는 남미 국가들이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결자해지할까
세계은행은 부진한 세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해법으로 ‘무역 관계의 재건’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세계은행은 보고서에서 “경제 협력은 (경제 성장을 위한) 어떤 대안보다 낫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미국이 지난 4월 수입품에 매기겠다던) 관세율이 낮아지고 무역 갈등이 완화될 경우 2025년과 2026년의 세계 경제성장률은 기존 전망치보다 0.2%포인트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세계은행은 또 각국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고 일자리 창출을 가속화한다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가 관세 전쟁을 촉발한 당사자인 만큼 결자해지에 나설 수 있다는 이유다. 지난 1일 트럼프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관세 유예 시한인 이달 8일을 맞아) 관세 유예를 연장할 계획인가‘란 질문에 대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며 “나는 많은 나라들에 (관세율 등을 적은)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 국가들에 대해서는 아예 (미국과의) 무역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은 수치(관세율)를 정해서 한 페이지나 한 페이지 반 분량의 친절한 서한을 매우 단순하게 써 보낼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미국이 무역 상대국의 상황을 일방적으로 평가해 각국에 관세율을 통보하겠다는 뜻이다.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무역통상안보실장은 “글로벌 무역 갈등의 장기화는 전 세계적인 불확실성을 키우고, 단기적인 제품 생산 활동뿐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 결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특히 미국처럼 거대한 시장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면 기업의 생산 및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