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나이트 앤드 라이트 페이스북 캡처

겨울철 도쿄의 일루미네이션은 볼 만하다. 롯폰기에선 화려하게 점등된 가로수 사이로 도쿄타워가 보이는 횡단보도가 ‘핫 스폿(hot spot)’이다. 이곳에서 가까운 미드타운은 멋진 음악까지 더해져 사진보다는 동영상으로 추억을 남기는 이가 많다. 이 두 장소만을 왕복하는 셔틀 택시가 있을 정도니, 도쿄의 겨울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꼭 겨울이어야 할까. 계절에 상관없이 밤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관광지로서의 가치는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도쿄는 이 점에 착안해 지난해 2월 대형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건물 등에 영상을 비춰 연출하는 예술 기법)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름하여 ‘도쿄 나이트 앤드 라이트(Tokyo Night & Light)’. 신주쿠 도쿄도청 제1청사의 동쪽 벽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영상 콘텐츠가 매일 상영되며, 높이 126m, 폭 110m에 달하는 이 캔버스는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하드웨어가 갖춰졌다면,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지난해 5월부터는 주말과 공휴일에 ‘고질라’ 영상을 상영하기 시작했고, 하루 1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리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건담’이 등장했다. 어느새 신주쿠는 주말 야간 투어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왜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했을까. 관광지로서 도쿄의 매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관광객은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즐기고자 한다.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밤 시간대를 풍요롭게 채울 콘텐츠를 마련하는 것이 도쿄엔 시급한 과제였다.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모리기념재단 도시전략연구소가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도시 종합 랭킹에서 도쿄의 나이트 라이프 충실도는 30위에서 8위로 급상승했다. 프로젝션 매핑 프로젝트가 도쿄의 야간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랜 축적의 시간이 있었다. 출발점은 이시타 미치유키(石多未知行)라는 크리에이터였다. 그는 2012년부터 도쿄에서 약 50㎞ 떨어진 즈시시(逗子市)의 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해 ‘1분 프로젝션 매핑’ 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5국에서 19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대회 규모는 점차 커졌고, 2021년부터는 높이 32m(돔 포함, 돔 제외 시 16m), 폭 112m에 달하는 도쿄 성덕기념회화관의 벽면을 캔버스로 활용하게 됐다. 이시타는 이 과정을 통해 세계적인 프로젝션 매핑 권위자로 자리매김했다.

도쿄도청은 2023년 2월 실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시타에게 기획 총괄을 맡겼다. 같은 프로젝션 매핑이라 해도 규모는 전혀 달랐다. 캔버스 크기는 4배 이상 커졌고, 콘텐츠 상영 시간도 1분에서 10~15분으로 늘어났다. 상영 횟수 역시 여름엔 5회, 겨울엔 9회까지 확대됐다. 화면이 커질수록 밝고 선명한 화질을 구현하려면 고휘도 디스플레이 기술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그 기술을 파나소닉 커넥트(Panasonic Connect)가 보유하고 있었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지난해 2월, 마침내 그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다.

프로젝션 매핑 외에 또 무엇이 가능할까. 역사적 건축물, 봄의 벚꽃과 가을의 단풍에도 빛을 비춰 황홀한 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 도쿄는 물의 도시다. 바닷가에 접한 오다이바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분수 쇼를 선보일 수 있고, 요요기 주변의 연못에서도 빛을 활용해 더욱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은 지금 하나둘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도쿄는 밤의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그에 걸맞은 기술을 덧붙인 뒤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상상력과 기술력, 그리고 실행력의 조합. 이것이야말로 밤에 더욱 빛나는 도시를 만든 원천이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