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이라면 ‘윤선생 영어교실’이 아주 낯설진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집으로 직접 방문해 입술과 혀 모양을 교정해 주며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모습. 부모님이 자녀의 영어 교육에 열의가 있던 가정에선 그리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광경이었죠.
그로부터 강산이 세 번은 변한 지금, 윤선생 영어교실에선 예전과는 사뭇 다른 선생님이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AI) 튜터’입니다. 윤선생 영어교실의 회원 전용 학습 앱인 ‘윤선생 Y플래닛’에 접속하면, 학생들은 AI 챗봇 캐릭터와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실제 사람과 대화가 아니다 보니 낯을 많이 가리는 학생도 부담 없이 말문을 열 수 있죠. 물론 AI라 해도 엄연한 교사인 만큼 대화를 마친 뒤엔 부족한 부분을 짚고 피드백까지 제공하는 ‘가르침’도 빠지지 않습니다.
AI는 지금 전 세계 교육 시장을 급속도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영국의 글로벌 리서치 기업인 테크나비오가 지난해 8월 발표한 ‘교육 분야 글로벌 AI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 분야 AI 시장은 지난해부터 매년 52%씩 성장해 2028년엔 23억2000만달러(약 3조2000억원)에 이를 전망입니다.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도 ‘AI 스승’을 마주하는 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웅진씽크빅의 ‘웅진스마트올’은 AI 학습 코칭에 기반한 스마트 학습 플랫폼으로, 학습자의 학습 패턴을 분석해 체감 난도와 적정 풀이 시간 등을 예측하고 개선이 필요한 습관을 실시간으로 관리해 줍니다. 대교는 중학생 대상 수능 대비 프로그램 ‘대교 써밋 수능 트레이닝’에 AI 기술을 접목했고, 미리내테크놀로지스가 운영하는 한국어 학습 플랫폼 ‘미리내’는 AI 문장 분석 시스템을 갖추고 전 세계 200만 명 이상이 이용 중입니다.
AI가 교사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단 일종의 조수처럼 활용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로드아일랜드주의 중학교 교사 존 골드는 수년 동안 축적한 수업 자료를 챗GPT에 학습시켜, 복잡한 독해 지문을 요약하거나 다양한 수준의 예시 에세이를 만들어 학생 맞춤형 자료로 활용합니다. 또 텍사스주 댈러스에선 에세이 자동 채점 시스템에 AI를 도입하기 위해 5년 동안 3억9000만달러를 투입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AI 선생님’을 둘러싼 우려도 여전합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정서적인 도야까지 포함하는 교육의 본질을 AI가 모두 감당할 수는 없다는 시각입니다. 실제로 지난 5월 천창수 울산시교육감은 스승의 날을 맞이해 교사들에게 보낸 서한문에서 “AI의 등장으로 미래의 교실에는 교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지만,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선생님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