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도심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불법 이민자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LA 경찰에게 가로막혔다. /뉴시스·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취임 5개월 만에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체포한 불법 이민자가 10만명을 넘어섰다고 백악관이 최근 밝혔다. 이는 1년 52주 중 20주간의 통계로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ICE는 올해 안에 총 26만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를 체포하게 될 전망이다. 지난해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ICE가 잡아들인 11만3431명보다 129.2% 증가한 수치다.

◇“민주당 지역에서 체포하라”

백악관이 불법 이민자 단속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나서면서 실제 체포 건수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스티브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ICE에 하루에 최소 3000명을 체포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당초 백악관이 제시했던 하루 목표치(1000명)의 세 배 수준이다. NBC는 “밀러 부비서실장이 ICE 수뇌부와 함께 한 회의에서 3000건의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ICE 고위 관료를 해고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의 으름장은 실적에 반영되고 있다. ICE는 지난 3일 하루 동안 2200명을 체포하며 역대 하루 최다 체포 기록을 세웠고, 최근 몇 주 동안 하루 평균 2000명에 달하는 체포가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불법 이민자 단속은 특히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트럼프가 로스앤젤레스(LA) 등에서 이민법 집행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민주당 집권 지역에 대한 단속을 더욱 강화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LA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州)의 개빈 뉴섬(민주당) 주지사가 공개적으로 반(反)트럼프 성향을 드러내자 이를 겨냥해 정치적 반격에 나선 셈이다. 트럼프는 지난 15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우리는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가 거주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대도시인 LA, 시카고, 뉴욕 등에서 불법 이민자 체포와 추방 노력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이 도시들은 민주당의 권력 기반으로, 민주당은 불법 이민자를 이용해 유권자 기반을 넓히고 선거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며, 성실하게 일하는 미국 시민들로부터 양질의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계의 ‘실적 지상주의’ 비판

다만 실적 지향적인 트럼프식 이민자 체포가 실제 불법 이민자 감소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잖다.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으려는 불법 이민자 수는 트럼프 취임 전 매월 10만명 수준에서 현재 1만명대로 줄었지만, 미국 내 체류 중인 불법 이민자 추방 실적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USA투데이는 “트럼프 행정부는 5월 말 기준 약 20만명을 추방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추방 규모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트럼프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추방 작전’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체포 실적만 강조할 뿐 추방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체포 실적을 올리려 단속 대상을 흉악범에서 취업 비자가 없는 노동자들까지 대폭 확대한 것이 오히려 체포 실적을 낮출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전자발찌 등 추적 장치를 활용해 ICE가 정기적으로 관리해오던 ‘안전한’ 불법 이민자까지 무차별적으로 체포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이 출석 조사를 기피하고 아예 잠적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NBC는 “공공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돼 정기적인 출석 조사만 받던 이민자들이 체포될까 두려워 법원 출석이나 정기 조사에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무차별적인 단속은 산업 현장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건설 현장이나 농장 등에서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며 산업 생태계를 떠받쳐 왔던 근로자 중 상당수가 불법 이민자였는데, 이들이 갑자기 체포되며 노동 공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국 노동자 1억7000만명 중 약 4%가 서류를 갖추지 못한 이민자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반발도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농업, 관광업에서의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농업 지대를 기반으로 한 공화당 의원들이 이런 불만을 트럼프에게 전달했고 트럼프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트럼프는 지난 12일 “우리 농민들은 20년간 일해 온 매우 좋은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다. 그들(농업 근로자)은 시민이 아니지만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발언해 농업 분야에 대한 단속 완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후 ICE 내부에선 즉각 ‘농업·육가공업·호텔에 대한 단속은 중단하라’는 공문이 하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스스로도 수십 년 동안 이민자의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럭셔리 호텔을 소유해왔다”며 “이민 정책이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