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린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 리그(UEL) 결승전에서 패한 뒤 레니 요로(왼쪽)와 브루노 페르난데스가 고개를 떨구고 있다. 맨유는 당초 이 대회에서 우승해 상위 대회인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고, 이를 통해 구단의 적자를 해결하려 했으나 이날 패배로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그래픽 김의균

2000년대 중반 박지성 영입으로 한국 축구 팬들을 ‘해축(해외 축구)’의 세계로 끌어들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 팀 성적은 1992년 프리미어리그 체제가 도입된 이후 역대 최하위인 15위를 기록했고, 한때 ‘세계 최고 부자 구단’으로 불렸던 재정 상태는 파산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악화 일로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맨유의 주가도 바닥을 치고 있다. 지난 4월 8일 주가는 올 들어 최저점인 12.21달러를 기록하며 한창 주가가 잘나가던 2018년(26.20달러, 8월 31일)과 비교하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현지에선 ‘몰락한 거인’ ‘재앙에 가까운 시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전문가들은 맨유의 몰락 배경으로 구단주 글레이저 가문의 방만한 경영과 잇단 오판을 지목한다. WEEKLY BIZ는 맨유의 몰락 원인을 다섯 문답으로 정리했다.

그래픽=김의균

◇1. 맨유의 상태는

현재 맨유는 ‘돈은 많이 쓰는데 축구는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맨유에 지난해 3억달러(약 4080억원)를 투자하고 지분 28.9%를 인수한 공동 구단주 짐 랫클리프 이네오스 그룹 회장은 BBC에 “일부 선수들은 실력이 부족하고, 일부는 몸값만 비싸다”며 비판했다.

실제 맨유는 최근 10여 년 동안 제대로 활용도 못할 선수를 영입하느라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었다. 영국 매체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2013년 이후 맨유의 선수 영입 총액은 13억파운드(약 2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이적료 3000만파운드 이상을 기록한 선수만 25명인데, 그중 ‘성공적인 영입’으로 평가받는 선수는 브루노 페르난데스 단 한 명뿐이란 분석이다.

이 같은 투자는 결국 맨유의 재정 악화로 이어졌다. 역설적이게도 맨유는 PL 구단 가운데 수익 규모가 여전히 최상위권이다. 지난 시즌만 해도 중계권 수입, 티켓 판매 등으로 6억6000만파운드를 벌어들이며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1억3000만파운드의 적자를 봤고, 누적 부채는 7억3000만파운드까지 불었다.

현금 유동성 부족도 위기의 원인으로 꼽힌다. 맨유는 당장 이적료 관련 누적 부채만 해도 4억7300만파운드 수준이다. 이 중 올해 안에 반드시 갚아야 하는 부채만 1억5400만파운드에 달한다. 보유한 현금성 자산 7400만파운드(지난해 기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랫클리프 회장이 “이 상태로 가면 크리스마스엔 구단 금고가 바닥날 것”이라고 한 이유다.

◇2. 언제부터 부채가 쌓이기 시작했나

맨유의 천문학적인 부채를 선수 영입 실패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 이미 20년 전부터 맨유의 재정 구조는 심각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맨유의 부채는 2005년 미국의 글레이저 가문이 구단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원래 보석·시계 도매업을 주로 하던 글레이저 가문은 1995년 NFL(미국 프로풋볼리그)의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인수했고, 이 팀이 2003년 챔피언에 오르며 스포츠 구단 운영의 수익성을 체감했다. 그리고 2년 후에 인수한 것이 맨유다.

문제는 인수 방식이었다. 글레이저 가문은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를 앞세워 금융권에서 거액의 자금을 빌린 뒤 일부러 부도를 내고, 맨유 구단이 그 빚을 갚도록 했다. 당시 구단이 떠안은 빚은 7억3100만달러에 달했다. 이후 글레이저 가문은 구단주로서 배당금, 경영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10억파운드 이상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글레이저 가문이 방만한 경영을 이어가는 동안 맨유는 망가져 갔다.

◇3. 쇄신 노력은 없었나

맨유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공동 구단주로 전격 합류한 랫클리프 회장이 쇄신의 칼을 빼 들며 구단 정상화에 나섰다. 영국 출신 석유화학 재벌인 그는 구단주에 오르자마자 강력한 구조조정의 칼을 들이댔다. 직원 250명을 감원하고, 기존에 제공하던 직원들의 무료 점심 식사를 없앴다. FA컵 결승전을 보러 가는 직원들에게 줬던 여행비도 주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랫클리프의 개혁 드라이브는 순탄치 않은 상태다. 개혁이 또 다른 비용을 야기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예가 성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에릭 텐하흐 감독을 경질하고 새로운 감독 후벵 아모링 감독을 선임한 것이다. 계약 기간이 남은 텐하흐 감독에게는 2000만파운드를 고스란히 지급해야만 했다.

과거의 경영 실패는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이미 영입한 선수 중 일부는 실력 부족 등으로 다른 팀에 임대돼 있지만,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 맨유는 그들에게 계속 연봉 일부를 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랫클리프 회장은 최근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4. 팬들의 반발은 없나

맨유의 팬들이 랫클리프 체제를 끝까지 지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최근 그가 내놓은 일부 개혁안이 팬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어서다. 팬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건 입장권 가격 인상이다. 맨유는 홈경기 입장권 가격을 5% 올리는 동시에, 그간 유지해 오던 어린이 및 65세 이상 노인 대상 할인 혜택까지 폐지했다. 경기력은 뒷걸음치고 있는데 입장료만 올렸다는 점에서 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구단의 ‘살아있는 전설’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과의 계약 해지도 논란을 키웠다. 맨유는 퍼거슨이 감독에서 물러난 뒤에도 구단 앰배서더(홍보대사)로 위촉해 매년 216만파운드의 연봉을 지급해 왔다. 그러나 재정난에 시달리는 현 상황에서 퍼거슨에게조차 고액 연봉을 줄 여력이 없다는 게 랫클리프 측의 판단이었다.

결국 지난 3월 수천 명의 팬이 거리로 나섰다. ‘축구도 모르는 미국 부자’ 글레이저 가문에 의해 침몰했던 맨유를 ‘영국인’ 랫클리프가 구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시위를 주도한 팬들은 “랫클리프가 오히려 글레이저 가문의 방패막이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5. 회생 가능성은 남아 있나

맨유는 현재 반등의 돌파구조차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지난달 21일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 리그(UEL) 결승전에서 토트넘 홋스퍼에 패배한 것이 뼈아픈 결과였다.

당초 맨유는 유로파리그 우승을 통해 다음 시즌엔 한 단계 위의 대회인 챔피언스리그(UCL)에 진출하길 기대했다. UCL은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 대회로 꼽힌다. 이 대회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입장권 수입, 스폰서 보너스, 상금 등으로 1억파운드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평가다. 기본적으로 UCL은 프리미어리그 상위 5팀이 진출할 수 있지만 맨유는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고, UEL 우승을 해야만 대회 출전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승전 패배로 이마저도 물거품이 됐다.

그럼에도 랫클리프는 여전히 맨유의 미래에 희망을 거는 분위기다. 그는 BBC 인터뷰에서 맨유가 2028년까지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할 것이란 목표를 내놨다. 랫클리프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표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3년 후에는 맨유가 과거와는 다른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