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8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의회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우리는 더 많이, 무엇보다도 더 효율적으로 일해야 합니다. 주 4일제 근무, 일과 삶의 균형만으로 국가의 번영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 13일 베를린에서 열린 ‘경제의 날’ 행사에서 이같이 호소했다. 친(親)기독민주당(CDU) 성향의 경제 단체인 독일경제위원회가 주최한 이 행사는 독일의 정계와 경제계 등 사회 각계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경제 정책 현안을 논의하는 연례 행사다. 이 자리에서 독일 신임 총리가 독일인의 근면·성실성을 강조하고 나선 셈이다.

이런 배경에는 주요국 중 가장 짧은 수준인 근로 시간 때문에 독일의 산업 경쟁력이 낮아졌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3년 독일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 시간은 1343시간으로 해당 통계를 집계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였다. OECD 평균(1742시간)에 비해 23% 낮고, 1위 멕시코(2207시간), 6위 한국(1872시간)보다 각각 39%, 28% 적은 수치다.

그래픽=김의균

독일 연방산업안전보건연구소(BAuA) 조사에서도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2019년 38.8시간에서 2023년 38.5시간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초과 근무 시간도 주당 평균 3.4시간에서 3.1시간으로 줄었다. 독일의 근로 시간은 전통적으로 협상력이 강한 노조의 입김에 의해 줄어왔다. 특히 금속노조(IG메탈)는 1980~90년대 장기 파업을 통해 다수 사업장에 주 35시간 근무제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노동 시간이 줄어드는 사이 산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0.2% 감소한 가운데 제조업 생산이 3% 떨어졌다. 독일 정부는 “제조업, 특히 기계 및 장비 제조나 자동차 등 주요 산업의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다”고 밝혔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하는 국제 경쟁력 평가에서도 22위로 7계단 내려앉았다.

노동 시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더라도 경제를 부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최근 독일 의회는 신규 부채가 GDP의 0.35%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던 ‘부채 브레이크’를 완화했다. 그러면서 1조유로(약 1560조원)에 달하는 재정 확장 및 기반 시설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독일 경제 정책연구소 ifo의 대표 클레멘스 푸에스트는 “더 많은 돈을 투입하는 것만으로 도로나 다리를 건설할 수 없다”며 “그러려면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족한 노동량을 늘리기 위해 메르츠 총리와 집권 CDU와 기독사회당(CSU) 연합 등으로 구성된 연립정부는 근로 시간 유연화를 골자로 한 노동 개혁에 나섰다. 하루 8시간으로 정한 기존 법정 근로 시간 대신, 유럽연합(EU) 기준인 주당 48시간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방안이 시행될 경우 노사 합의를 통해 하루 최대 13시간까지도 근무할 수 있다.

여론은 두 쪽 난 상태다. 지난 23일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개혁안을 지지하는 응답은 46%로 반대 응답(44%)과 팽팽하게 나타났다. 산업계는 “효율적 근무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개혁안에 찬성하고, 노동계는 “근로자 건강과 휴식 시간 보장이 어렵다”며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