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Q: 생전에 성실히 직장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저에게 ‘은행 예금 5억원을 주겠다’는 자필 유언장을 남기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언장을 들고 은행을 찾았더니 은행에선 “상속인 전원의 동의서와 인감증명서를 가져오지 않으면 예금을 지급해줄 수 없다”고 합니다. 유언장이 있는데 왜 은행에선 이를 인정해주지 않나요.

A: 민법은 유언의 방식과 절차를 상당히 까다롭게 정해뒀습니다. 이에 유언장이 있다고 해도, 그 유언이 민법이 정한 절차와 요건을 모두 갖췄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자필 증서 유언의 경우 유언한 사람이 유언 내용을 전부 손으로 쓰고, 연월일과 이름, 주소를 포함해 서명과 날인을 모두 갖춰야만 효력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은행 입장에선 인출을 요구하는 사람이 가져온 유언장이 이러한 요건을 모두 갖췄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유언은 언제든 철회가 가능하고, 새로운 유언을 하면 이전 유언은 자동으로 무효가 됩니다. 은행은 고객이 가져온 유언장이 고인의 최종 유언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쟁점은 ‘유언 능력’입니다. 유언자가 유언을 할 당시 제대로 판단할 능력을 갖췄는지가 중요한데, 이 부분 역시 은행이 알 수 없습니다. 유언으로 한쪽 상속인에게 많은 재산이 돌아가는 경우 다른 상속인이 유언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에 최근엔 ‘유언 대용 신탁’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생전에 신탁회사와 계약을 맺고 자산 운용 및 사후 분배 방식을 미리 정해두는 방식입니다. 신탁회사가 금융 당국의 감독을 받으며 자산을 관리하고, 고인(피상속인)을 대신해 자산을 분배해줘 상속인들 사이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다만 유언 대용 신탁 역시 수수료 부담이 있고, 유류분 청구(법정상속분의 일정 비율 보장)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기존 유언 제도가 저렴한 비용으로 고인의 의사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에, ‘유언 공시 제도’ 등을 통해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