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집에만 갇혀 있던 사람들이 공연장으로 뛰쳐나왔다. 음반이나 디지털 스트리밍에 의존해 음악을 소비하던 시대를 지나, 다시 ‘살아 있는 음악’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 산업의 중심축도 음반에서 공연으로 옮겨가고 있다. 앨범을 팔기 위해 무대에 오르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공연을 위해 신곡을 발표하는 시대가 됐다는 평가(월스트리트저널)까지 나온다.
2020년 12억달러(약 1조7000억원) 규모로 쪼그라들었던 세계 공연 시장은 이후 빠르게 반등해, 지난해엔 95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이 기회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기업이 미국의 공연 기획사 라이브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이하 라이브네이션)다. 지난해에만 230억달러(약 32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한 해 동안 1억장 가까이 판매됐던 티켓 수를, 올해 들어 불과 5개월 만에 넘어섰다. ‘세계 최대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란 수식이 무색하지 않은 성과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소비자와 규제 당국은 라이브네이션의 독점 행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20년 기준 북미 공연당 평균 티켓 가격은 90.96달러였지만, 지난해에는 136.45달러로 급등했다. 특히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나, 15년 만에 재결합한 오아시스의 공연에서는 티켓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결국 미 법무부는 공연 티켓 예매 시장의 약 80%를 장악한 라이브네이션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라이브네이션의 성장은 과연 시장 독점의 결과였을까. WEEKLY BIZ는 법무부가 지난해 5월 제기한 소송의 소장(訴狀)과, 라이브네이션이 소송 기각을 요청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뉴욕남부지방법원의 지난 3월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했다. 이 문서들에는 라이브네이션이 미국과 세계 공연 시장을 어떤 방식으로 장악했는지가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라이브네이션의 수익 구조 ‘플라이휠’
라이브네이션의 독점 구조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회사의 수익 모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장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는 라이브네이션이 이른바 ‘플라이휠(Flywheel)’ 구조를 활용해 공연 시장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고 본다. 공연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선 공연장을 비롯해, 홍보와 후원을 맡는 프로모션, 표를 판매하는 티케팅 등 단계별로 다양한 사업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라이브네이션은 이 모든 분야에 직접 진출해 일종의 ‘일감 몰아주기’를 한다. 자사 공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스스로 홍보하고, 자사 플랫폼으로 티켓을 판매하며, 공연장 내 생수 판매나 스마트폰 보조 배터리 대여, 주차비 수익까지 모두 챙기는 식이다.
이처럼 각 사업 부문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를 가리켜 ‘플라이휠’이라고 부른다. 공연장, 프로모션, 티케팅이 서로 수익을 보완하며 순환적으로 강화되는 구조라는 뜻이다. 법무부가 라이브네이션의 2023년 실적 보고서를 토대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의 공연장 사업 수익률은 1.7%로 가장 낮지만, 전체 매출은 188억달러로 가장 크다. 반면 티케팅 부문(매출 29억달러)은 수익률 37.7%, 프로모션 부문(11억달러)은 수익률이 61.6%에 달한다. 공연장에서 벌어들인 매출이 고수익 사업 부문에 재투입되면서, 전체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플라이휠 구조를 유지하는 핵심 축은 공연장 부문이다. 라이브네이션은 1996년 설립 당시만 해도 프로모션 전문 회사였지만, 이후 주요 공연장을 하나둘씩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현재는 전 세계 373개, 이 가운데 북미 지역에서만 265곳 이상의 공연장을 소유하거나 독점 예약권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내 상위 100대 공연장 중 60곳 이상이 라이브네이션이 독점권을 가진 시설이다.
◇‘보복의 역사’로 일군 명성
라이브네이션이 공연 산업 전반에서 독점적 지위를 굳히는 전환점이 된 사건은 2010년 티켓마스터 인수였다. 당시 이미 공연장과 프로모션 부문에서 각각 6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던 라이브네이션은 티케팅 부문까지 품으면서 사실상 전방위 지배력을 갖춘 구조를 완성했다. 특히 미국 내 티켓 유통의 약 80%를 점유한 티켓마스터를 인수하면서, 라이브네이션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지 말라’는 조건부로 인수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이 조건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다. 라이브네이션은 이후에도 티케팅 시장 80% 점유율을 유지했고, 해당 부문의 매출은 합병 이전 양 사 매출의 4배 수준까지 증가했다.
이렇게 확보한 시장 지배력은 라이브네이션의 강력한 무기로 작용했다. 라이브네이션은 자사 소속이 아닌 프로모터와 계약한 아티스트에게 자사 공연장 사용을 제한했다. 라이브네이션 공연장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라이브네이션을 프로모터로 써야 한다는 뜻이다. 또 자사 소유가 아닌 공연장이 티켓마스터가 아닌 창구로 티켓을 팔려고 하면, 라이브네이션은 해당 공연장에 더 이상 자사 공연을 배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압박을 가했다. 일부 공연에선 티켓마스터가 아닌 채널에서 티켓을 샀다는 이유로 관객의 입장을 막는 사례도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경쟁사들은 줄줄이 도산하거나 결국 라이브네이션에 인수되는 수순을 밟았다. 미 법무부는 이에 대해 “라이브네이션의 명성과 ‘보복의 역사’는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어, 라이브네이션이 개별 공연장을 명시적으로 협박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반독점 소송
미 법무부가 지난해 라이브네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하면서 밝힌 조사 내용을 보면, 법무부는 라이브네이션의 독점적 행태로 인해 소비자들이 높은 티켓 가격과 각종 수수료를 떠안고, 소규모 공연장과 프로모터들은 공연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 같은 조사를 바탕으로 라이브네이션과 자회사 티켓마스터 간의 기업 분리를 법원에 요구했다. 독점 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톱니바퀴의 연결고리를 끊어달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소송에는 법무부뿐만 아니라 30여 곳의 주·지구 검찰총장이 공동 참여해 반독점법 집행의 수위가 이례적으로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라이브네이션 입장에선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해당 소송을 기각해달라는 라이브네이션의 요청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욕남부지방법원은 지난 3월 라이브네이션의 기각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원고(법무부) 측의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판결문에는 ‘그럴듯하다(plausible)’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원고(법무부 등)는 소장에서 그럴듯하게 담합(구조)을 주장하고 있다”는 식이었다.
물론 이번 소송이 실제로 라이브네이션의 구조 해체로 이어질지는 향후 재판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극단적으로는 플라이휠 구조 자체를 분해하는 조치가 나올 수도 있고, 일부 사업 매각이나 수수료 인하 등 조건부 합의에 이를 수도 있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이번 소송을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반독점 소송”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음악 산업의 지형을 뒤흔들 중대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