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발사에게 늘 적자를 보고 있다. 그는 나에게서 어떠한 것도 사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우리 일상도 비슷하다. 나는 단골 식당과 미용실에 돈을 쓴다. 그들이 나에게서 무언가를 사는 일은 없다. 무역으로 따지면 나는 늘 ‘적자’인 셈이다. 그렇다고 문제 될 건 전혀 없다. 오히려 좋은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그들에게 늘 고맙기만 하다.
국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무역 분야 석학인 브렌트 니먼 시카고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이 스리랑카에서 옷을 수입하는 금액이, 스리랑카인들이 미국으로부터 약이나 가스터빈을 사는 금액보다 크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공정치 못한 무역’이라 규정했다. 그리고 상호 관세를 통해 이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미국의 연간 무역 적자는 9184억달러(약 1300조원)에 달한다. 물론 무역 적자가 지속되면 경계할 필요는 있다. 수출보다 수입이 많다는 건, 결국 외국에서 자금을 끌어와 소비하거나 투자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원한 차입은 있을 수 없기에, 언젠가는 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
문제는 접근 방식이다. 특정 국가와의 ‘무역 균형’을 맞추는 식의 관세 정책은 부작용이 더 크다. 내가 단골 미용실과 무역 균형을 맞출 필요가 없듯, 국가는 개별 무역 상대국과 일일이 장부를 맞출 필요가 없다.
예상대로, 트럼프가 지난달 2일 새로운 상호 관세 조치를 발표하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하락했고, 최근 회복세에도 그 여파는 남아 있다.
이런 식의 무역 전쟁은 낯설지 않다. 트럼프의 첫 임기 때에도 중국과의 관세 전쟁이 있었다. 2018년에는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철강, 알루미늄을 시작으로 총 3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가 부과됐다. 중국 역시 1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로 응수했다. 결과는 뚜렷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파블로 파젤바움 교수와 예일대 아밋 칸델왈 교수의 2022년 논문에 따르면,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의 대부분은 미국 소비자가 떠안았다. 게다가 이 관세 전쟁은 미·중 양국의 실질 국민소득을 줄이고, 경제 성장도 깎아내렸다.
최근 발표된 또 다른 연구는, 최근 고율 관세 정책 역시 소비자 물가에 빠르게 전이됐음을 보여준다. 하버드대 알베르토 카발로 교수 등은 고빈도 소매 가격 데이터를 분석해, 관세 발표 직후 중국산 제품의 가격이 즉각 오르고, 미국 제품조차 동반 상승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이는 공급망 혼선과 기업들의 전략적 가격 조정이 만든 결과다. 결국 소비자들은 ‘싸움’의 대가를 치른 셈이다.
무역은 누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다. 싸워서 이겼다고 해서, 그게 진짜 승리는 아니다. 국제 관계의 핵심은 신뢰인데, 지금 그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