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매긴 고율 관세가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미·중 양국은 지난 12일 서로 간 관세를 90일 동안 대폭 내리기로 했지만, 수입 자동차(4월 3일)·자동차 부품(5월 3일)에 대한 품목별 관세는 여전히 관세전쟁의 영향권에 있다. 이에 미국 자동차 회사 ‘빅3’로 불리는 포드,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는 최근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일제히 향후 실적 전망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고까지 했다. 관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 전인 1분기부터 이미 실적 하락세를 겪고 있는 이 회사들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무역 환경에 잔뜩 움츠러든 모양새다. 이들이 파악하는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여파는 어느 정도일까. WEEKLY BIZ가 미 자동차 빅3의 1분기 실적 보고서와 실적 발표 자료 등을 통해 그 후폭풍을 분석해 봤다.
◇실적은 미리 쪼그라들었다
무역 전쟁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미국 자동차 빅3의 실적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특히 포드는 뼈아픈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 1분기 순이익이 4억7100만달러(약 66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13억2000만달러) 대비 64% 급감했다. 매출도 407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 줄어들며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포드만큼은 아니지만 GM 역시 실적 부진을 피하지 못했다. GM의 지난 1분기 순이익은 28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6% 줄었다. GM의 경우 매출은 440억달러로 소폭(2%) 증가했지만, 매출 증가 폭보다 순이익 감소 폭이 컸다.
스텔란티스는 이번 분기 순이익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매출 감소 폭은 빅3 가운데 가장 컸다. 매출은 전년 대비 14% 급감한 402억달러에 그쳤다. 이 3사의 실적 악화는 아직 관세의 직접적인 여파가 반영된 결과는 아니다. 포드는 관세정책 발표 이후 자동차 생산량이 전반적으로 줄었다고 설명했지만, GM은 고수익 트럭과 SUV(스포츠유틸리티차) 생산이 공장 가동 중단과 화재 등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스텔란티스는 유럽의 경형 상용차 출하가 줄어든 것이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빅3의 부진은 관세 여파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해석된다.
◇관세 폭풍에 최대 50억달러 더 든다
그런 점에서 관세 충격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2분기 전망은 한층 더 어두워지고 있다. 1분기 마지막 달인 3월엔 관세 인상을 앞두고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미리 사두려는 수요가 몰려 그나마 1분기 실적을 방어했다. GM의 폴 제이컵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실적 발표회에서 “3월에는 관세 영향을 우려한 소비자들의 선제 구매 덕분에 수요가 강했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빅3 완성차 업체들은 멕시코 등에서 만들어 들여오는 자사 브랜드 차 가격이 비싸지거나 외국산 자동차 부품 값이 올라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자동차 업체들은 올해만 최소 15억달러에서 최대 50억달러 수준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포드는 15억달러, GM은 50억달러의 손실 가능성을 예상했다. 스텔란티스는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처럼 상황이 불확실하다 보니 경영진도 실적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GM은 당초 지난달 29일로 예정됐던 실적 발표를 이틀 미뤄 지난 1일에 열었고, 기존에 제시했던 연간 실적 전망을 철회했다. 자사주 매입 계획도 보류한 상태다.
포드의 쿠마 갈호트라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희토류를 예로 들면, 지난 몇 주 사이 업계 전반에서 수입 방식 자체가 훨씬 복잡해졌다”며 “일부 부품의 공급 차질이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는 곧 물량과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스텔란티스의 더그 오스터만 CFO 역시 “관세로 인한 극심한 불확실성 탓에 올해 실적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도 미국 ‘홈팀’에 유리할 것이다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미국 빅3 완성차 업체들은 주주들을 안심시키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특히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장기적으로는 미국 자동차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정부 친화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더그 오스터만 스텔란티스 CFO는 실적 발표회에서 “4년 뒤 새 행정부가 들어선다고 가정하더라도 트럼프의 관세 조치가 장기적으로 미국에 좋은 일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미국 행정부의 의도가 제조업 기반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며 “스텔란티스는 미국 제조업 기반에서 큰 역할을 하는 ‘홈팀’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정부가 미국 제조업, 특히 우리와 같은 ‘홈팀’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는 한,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 업체들은 트럼프의 관세 강화 기조에 발맞춰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위한 전략도 속속 내놨다. 공통적으로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 요건을 충족하는 부품 사용 비율을 높여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USMCA는 시급 16달러 이상을 지급하는 부품 업체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해 자동차 부품 관세를 면제하고 있는데, 이 같은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들에서의 부품 수입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메리 배라 GM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 내 제조 역량과 공급망을 강화해 글로벌 무역 정책 변화에 대응할 준비를 해왔다”며 “2019년 이후 미국 내 직접 구매 비율을 늘린 결과, 북미 생산이 27% 늘었고 미국에서 조립된 차량의 80% 이상이 USMCA 기준을 충족하는 부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美 3사, 해법은 모두 달랐다
미국 빅3 완성차 업체들은 모두 USMCA 기준을 준수하는 것을 단기 해법으로 제시했지만, 장기적인 대응 전략은 조금씩 달랐다. 포드는 관세의 직접적인 영향을 가장 덜 받을 것으로 예상되자, 최근 출시한 신차 판매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포드는 이미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80%를 자국 내 공장에서 조립하고 있어, 3사 중 관세 부담이 가장 적은 회사로 평가된다. 짐 팔리 포드 CEO는 “1분기 실적은 관세로 인한 영향을 제외하면 당초 세운 연간 전망에 부합하는 수준”이라며 “아직 ‘국내 생산 우위’를 논하기엔 이르지만, 북미 시장에서 가장 신선한 차량 라인업을 갖춘 만큼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GM은 전기차를 앞세운 반격에 나섰다. 1분기 실적이 전반적으로 부진했지만, 유일하게 매출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전기차 부문의 성과가 주목받고 있다. 메리 배라 GM CEO는 “1분기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10%였으며, 3월에는 12%까지 올라 2위 전기차 제조사로서 입지를 다졌다”며 “앞으로도 시장 수요에 맞춘 생산량을 적절히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텔란티스는 유럽 시장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 더그 오스터만 스텔란티스 CFO는 “유럽에서의 (신차) 출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1분기에 걸쳐 집중돼 있다”며 “신차 효과가 본격화되는 2분기부터 시장점유율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