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가와 마사시치 상점(이하 나카가와)이란 긴 이름의 회사가 있다. 1716년 교토 옆의 ‘나라’라는 지역에서 삼베 원단을 팔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에도 시대 무사나 스님의 옷, 다기를 닦는 수건 등 직물로 만든 생활용품 전반으로 취급 품목을 확장했다. 가업을 잇는 전통에 따라 나카가와 준은 2002년 회사에 합류했고, 2008년 경영이 어려워지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표 자리에 올랐다. 그는 4년 만에 적자였던 잡화 부문을 흑자로 전환시켰고, 10년 만에 사업 규모를 13배, 매장 수를 20배로 확대했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2008년 당시 일본의 공예 시장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일본 각지에는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공방이 많았지만, 대부분 영세한 가업 형태로 운영됐다. 판로가 부족해 판매가 부진했고, 후계자가 없어 폐업하는 경우도 흔했다. 가성비 높은 공산품이 확산하면서 공예 시장 규모는 1980년대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나카가와 준은 “일본 전통 공예 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비전을 내걸고, 2009년부터 컨설팅 사업에 뛰어들었다. 주요 대상은 소규모 공예 업체들이었다. 이들에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상품 개발을 지원했다.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한 도자기 제조 업체엔 지역 특색을 살린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도록 도와 연 매출 수억 원 규모로 재기시킨 사례도 있다고 한다.
2011년부터는 소규모 일본 전통 공예 업체들과 함께 ‘다이닛폰이치’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열었다. 나카가와는 자신이 컨설팅한 영세 공예 업체들이 전시회에 참가해 판로를 넓히고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도록 길을 터줬다. 2018년부터는 전통 공예 업체라면 나카가와의 컨설팅을 받지 않은 업체도 참석할 수 있도록 해 규모가 더욱 커졌다. 지난 2월 도쿄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2800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와 브랜드 100곳의 제품을 직접 접했다.
현재 나카가와는 일본 내 6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한다. 시부야에 있는 도쿄 매장은 나라, 후쿠오카와 함께 3대 플래그십 스토어 중 하나로 꼽히며, 이곳에선 제품 하나하나가 ‘장인의 손’을 거쳤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다. 예를 들어, 행주 하나도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에서 1300년 전에 전해진 삼베 직물 기술은 나라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가야오리’는 이러한 전통을 계승한 직물 공예다. 기나긴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 이 제품의 매력은 바로 무심한 듯한 심플함에 있다. 수 세기에 걸쳐 전해져 온 일본의 미(美)의식은 지금도 여전히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런 문구를 보는 순간, 행주는 단순한 주방용 천이 아닌 장인의 작품으로 승화된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이 매겨져도 ‘장인의 손길’이란 맥락이 강조되기에 가격 저항이 무너지게 된다.
나카가와 준은 2013년쯤부터 회사를 상장시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상장을 하면 기업 규모를 더 키울 수 있고, 소규모 전통 공예 업체들에도 ‘우리도 언젠가 상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2년 반에 걸친 고민 끝에 상장의 꿈을 접었다. 상장 기업이 되면 주주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손해를 감수하며 공예 장인을 육성하는 일은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논리가 100% 지배하는 회사는 결코 좋은 회사가 될 수 없다. 논리 70%와 직관 30%를 섞어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소 생각을 따랐다.
2018년 나카가와 준은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외부 경영인에게 넘겼다.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상장을 포기하면서도, 가족 경영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외부 인재를 수장으로 임명했다. 혼자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장인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회사. 우리도 이러한 기업이 더 많이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