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쉬 사가피안 하버드 케네디 스쿨 교수 연구실.

“진료받을 때 ‘발달한 의학용 인공지능(AI)’과 ‘경험이 풍부한 의사’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큰 고민 없이 AI를 고르겠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연구실에서 만난 소루시 새거피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 교수는 최근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30년 경력의 의사를 믿겠나, 아니면 AI를 믿겠나”라는 질문을 던지자 주저 없이 이렇게 말했다. 새거피언 교수는 케네디스쿨 공공 영향 분석 과학 연구소장을 맡으며 더 넓은 의료 분야에 AI를 접목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미국 내 대표적 학자다.

실제로 최근 헬스케어 분야에선 AI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나날이 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의료·헬스케어 분야 AI에 대한 민간 투자는 2018년 11억3000만달러(약 1조6300억원)에서 지난해 93억3000만달러로 약 8배 수준으로 커졌다.

그래픽=김의균

◇AI가 바꾸는 의료 현장

-실제로 AI가 의료 현장에 도움이 되고 있나.

“다양한 현장에서 AI가 의사들 손을 덜어주고 있다. 의료진은 환자 상태 기록은 물론 보험사가 요구하는 자료까지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대형 언어 모델(LLM)을 기반으로 한 AI를 활용하면서 서류 작업 상당 부분이 줄었다. 의사가 환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돼 환자 상태를 더 잘 알 수 있게 된 셈이다. 병을 진단하는 분야도 진보하고 있다. AI가 방사선 이미지를 분석할 때 의료진보다 더 빠르고 세밀하게 문제 부위를 찾아낼 수 있다.”

지난 3월 마이크로소프트가 출시한 의료용 AI 어시스턴트 ‘드래건 코파일럿’은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 업무 부담을 덜어줄 대표적 AI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AI에 환자 정보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임상 통계, 진료 의뢰서 등이 작성된다.

-의료 현장에서 인간보다 AI를 더 믿어도 되나.

“누가 AI를 개발했는지, AI가 어떤 프로세스에 따라 움직이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임상 시험 등 테스트를 거친 AI와 경험이 많은 의사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당연히 AI를 고르겠다. 다만 아직은 완성도가 떨어지는 AI 도구를 개발한 스타트업이나 업체가 많아 전적으로 AI를 의지하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

-왜 AI를 더 믿을 수 있다고 보나.

“나는 오늘도 학생들에게 ‘측정 오류’에 대해 가르쳤다. 인종이나 환자 유형 등 데이터 세트를 만들 땐 오류가 나지 않도록 다양한 측면을 포괄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백인 남성 환자들 위주로 자료를 모으는 식으로) 편향적일 수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간은 편향적이라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

◇AI 시대, 풀어야 할 숙제는

-AI가 아직 부족한 분야는.

“AI는 인간보다 연산 능력이 뛰어나 분석에는 탁월하지만, 치료법을 제시하는 일은 아직 부족한 측면이 있다. 치료법을 제안하려면 수많은 상황을 고려해야 하고 변수도 많다. A라는 약, B라는 약을 쓰면 각각 어떤 일이 벌어지고, 아무것도 조치하지 않았을 땐 어떨지까지 예측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몇 건의 데이터를 입력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의사들이 수년 동안 배우고 경험을 통해 익히는 능력이다. 지금 현장에서 AI가 활용되는 문서 자동화, 의료 영상 분석, 챗봇을 통한 환자 상담 등은 비교적 쉬운 분야다. 반면 상황에 따라 의학적 판단을 내리고 복잡한 약물이나 치료법을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AI에게 어렵다.”

-AI가 발달하면 의사·간호사 일자리가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일자리 자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일자리의 형태가 바뀔 뿐이다. 반복적 업무는 AI가 대체하고 사람은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예컨대 방사선과에서 AI 도구로 판독이 가능한 쉬운 이미지는 AI로 판독하고, 어려운 이미지는 방사선과 전문의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그래서 AI 도구를 활용하는 능력이 필수적인 세상이 올 것이다.”

-최근 흑인과 백인의 영아 사망률 차이를 분석한 연구는 어떤 의미인가.

새거피언 교수는 지난달 1일 미국의 흑인 영아 사망률이 백인 영아보다 115% 높다는 내용의 연구를 발표했다.

“(백인과 흑인 사이) 의료 접근성과 의료 서비스의 질에서 심각한 의료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앞으로 AI를 통해 의료 접근성이 개선되면 인종·지역·경제력 차이에 따른 의료 격차가 지금보다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