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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인 엑손모빌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꽃길’을 걸을 수 있을까. 트럼프는 취임 직후 ‘미국 에너지의 해방(Unleashing American Energy)’ 행정명령을 통해 에너지와 천연자원의 생산 관련 규제를 일거에 없애버렸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제한도 해제했다. 이에 미국 에너지 업계는 한때 파티 분위기였으나, 이 분위기는 곧 반전된다. 엑손모빌의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회가 있던 지난달 31일 트럼프가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캐나다산 수입 원유 등에 관세를 매기면 엑손모빌을 비롯한 미국 석유 기업들은 비싼 값에 원유를 사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수익성도 함께 떨어진다. 롤러코스터 타듯 분위기가 급변하는 가운데 WEEKLY BIZ는 엑손모빌이 트럼프 시대에 순항할 수 있을지 4분기 실적 보고서·실적 발표회 자료 등을 통해 분석했다.
◇트럼프 시대를 환영한다
엑손모빌은 그간 친환경 에너지 위주의 정책 흐름에서 다시 화석 연료에 기회를 터준 트럼프의 취임을 공개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엑손모빌의 대런 우즈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31일 4분기 실적 발표회 자리에서 “지난 (조 바이든) 정부의 액화천연가스(LNG) 신규 수출 허가 중단과 해양 시추 제한에 관한 행정명령은 정책적 실수였다”면서 “이번 (트럼프) 정부가 이를 되돌린 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석유와 천연가스는 경제성장, 일자리와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라며 “산업 정책은 (지난 행정부에서처럼) 정부가 승자와 패자를 일방적으로 골라서는 안 된다”라고도 했다. 바이든 정부는 그간 각종 친환경 정책을 추진한다는 명목으로 정유업계에 규제책을 꺼내 들었는데, 트럼프 정부가 이를 되돌리자 공개적으로 반색했다는 평이다.
◇관세 충격에 달라질 건 없다고 낙관한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1일 캐나다산 원유 등 에너지 제품엔 10%, 멕시코산 에너지 제품엔 25%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록 지난 4일 “한 달 유예한다”는 결정이 나왔지만 한시적 조치라 우려는 여전하다. 2023년 기준 캐나다와 멕시코산 원유는 미국 정유업체 원유 소비량의 약 28%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엑손모빌은 수입 에너지에 매기는 관세가 자사에 끼칠 영향을 두고 “별로 달라질 건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JP모건 애널리스트가 이번 실적 발표회에서 ‘엑손모빌은 캐나다에 원유 채굴 시설 등 자산이 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부과가 엑손모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느냐’고 묻자, 우즈 CEO는 “우리는 지난 8년 동안 오로지 비용을 낮추고, (원유) 배럴당 이윤을 늘리는 데 몰두해 왔다”며 “관세로 인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우리는 앞으로도 가격 경쟁력이 높은 제품을 공급해 도전을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수입 에너지 고관세 정책으로 인한 엑손모빌의 수익성 악화나 생산 감소 등을 우려하는 시선이 있지만, CEO가 나서 이를 일축한 셈이다.
◇유가 하락 속에도 실적은 선방했다
엑손모빌은 지난해 연간 순이익 337억달러(약 49조원), 영업현금흐름(영업상 현금 유입과 유출의 합계)은 55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4분기 실적 보고서에 밝혔다. 최근 10년 동안 셋째로 높은 성과다. 우즈 CEO는 “우리 회사는 2024년에 (경쟁자들이) 따라잡기 힘든 가치를 만들어냈다”며 “우리의 수익은 경쟁사보다 높은 것은 물론 자기자본비용(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수익률)을 크게 상회했고, S&P500의 모든 기업 중 단 다섯 곳을 제외하고 주주에게 가장 많은 현금을 나눠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엑손모빌은 지난해 주주에 360억달러를 환원했다.
엑손모빌은 이 같은 성과가 글로벌 경기 둔화로 국제 유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일어났다는 점을 강조했다. 회사는 실적 보고서에 “2024년에는 천연가스 가격과 (원유) 정제 마진이 부진했다”며 “가격과 마진이 쪼그라드는 와중에 우리가 5년 동안 140억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늘린 건 더욱 의미가 크다”고 적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 원유 가격은 최근 10년간 평균치에 그쳤고, 천연가스는 공급이 크게 늘면서 2020년 이후 최근 10년 평균치를 처음으로 밑돌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엑손모빌은 “우리는 고부가가치 상품을 늘리고 생산 비용을 낮춰 매출 창출 능력을 2019년 대비 두 배 이상 높였다”면서 “마진이 줄어든 시장 상황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이아나 유전 등에서 생산 늘린다
엑손모빌은 원유 생산과 판매 확대를 성장 비결로 꼽았다. 엑손모빌에서 원유 채굴·생산을 담당하는 업스트림(upstream·에너지 탐사 및 생산 공정) 사업부는 하루 원유 생산량을 2023년 374만배럴에서 지난해 433만배럴로 늘렸다. 1년 만에 16%가량 증산한 셈이다. 게다가 지난해 생산분의 절반 이상은 기존 시설 대비 운영 비용은 낮고 마진은 높은 ‘우수 자산(advantaged assets)’에서 나왔다고 한다.
엑손모빌의 우수 자산은 퍼미안(텍사스 서부), 가이아나와 LNG가 대표적이다. 우즈 CEO는 “가이아나 심해 유전은 탐사부터 하루에 65만배럴을 생산하는 데까지 단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이는 전 세계 심해 유전에서도 손꼽히는 속도”라고 했다. 엑손모빌에 따르면 우수 자산의 생산 확대에 힘입어 지난해 회사 전체 생산량의 50% 이상은 우수 자산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즈 CEO는 “이런 성장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며 미국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했다. 엑손모빌은 2030년까지 생산량을 하루 540만배럴까지 늘리면서 회사의 마진율을 높여줄 우수 자산 생산 비율도 60% 이상까지 끌어올린단 계획이다.
◇탄소 배출 절감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
엑손모빌은 실적 발표에서 원유 채굴을 늘리면서도 탄소 배출 절감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우즈 CEO는 “우리는 바이든 행정부가 마련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비롯한 각종 (친환경) 정책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탄소 절감에 신경 썼다”며 “세상을 발전시키고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번영을 위해서라도 에너지원은 꾸준히 공급해야겠지만, (우리는) 탄소 배출 감소의 필요성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엑손모빌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자료에서 “2030년 일부 시설의 넷제로(탄소 중립)를 달성하는 걸 시작으로 2050년에는 완전한 넷제로에 이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엑손모빌은 이를 위해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술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CCS란 석유 채굴 시설 등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압축한 뒤 지하나 해양 깊은 곳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캐시 미켈스 수석 부사장은 “지난해 기준 우리의 CCS 계약은 5개까지 늘었다”며 “(최근 각광받고 있는) 데이터센터의 탈탄소를 위한 계획도 마련했다”고 했다. 미켈스 수석 부사장은 또 “엑손모빌이 원유와 가스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메탄가스의 비율은 2016년에 비해 60% 넘게 줄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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