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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청나라(현재 중국) 전장시(市)에서 빨간 군복을 입은 영국군(오른쪽)이 초록색 옷을 입은 청군을 공격하고 있다. 청은 이 전투를 비롯해 '아편 전쟁'에서 패해 영국의 뜻대로 아편 무역을 합법화했다. /브리태니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캐나다·멕시코와 중국에 보편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무역 전쟁의 막이 올랐다. 그러나 미국의 이번 조치가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트럼프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역사적으로 관세가 대표하는 보호무역 정책은 최악에는 물리적 충돌이나 세계경제의 공멸까지 불러왔기 때문이다.

보호무역으로 인한 무역 분쟁이 결국 전쟁의 포성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로는 ‘아편전쟁’이 꼽힌다. 19세기 중반 영국은 차(茶) 수요가 늘면서 중국에서 차를 대량으로 수입했다. 이 때문에 영국은 극심한 무역 적자에 시달린다. 영국이 이를 메운 수단이 아편이었다. 영국은 중국에 수출하는 아편 물량을 늘리기 시작했고, 아편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중국은 아편 수입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자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마약 수입을 막는 일종의 보호무역 조치를 내린 셈이다. 이런 조치에 반발한 영국이 1839년 무력 공격을 감행해 아편전쟁이 발발했다. 이번에 트럼프가 중국과 캐나다·멕시코에 관세 장벽을 세운 명분 중 하나가 펜타닐이라는 마약 유통 근절이기도 하니, 청나라가 아편 수입을 막은 보호무역 조치와도 닮은 점이 있는 셈이다.

관세가 무역 협상 카드로 본격 쓰인 것은 1920년대 미국이 처음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관세는 세수가 부족하면 세율을 올리고, 늘어나면 다시 낮추는 연방정부 재정 확보 수단 정도였다. 그러나 1913년 미국에서 소득세가 도입되고 관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지면서 재정 확보 역할도 더불어 감소한다. 그러나 관세는 1920년대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카드로 쓰이며 다시 주목받는다. 문제는 이즈음 찾아온 대공황이다. 미국이 1930년에 제정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수입품 2만여 종류에 평균 59%, 최고 400%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캐나다·영국·독일 등 미국의 무역 상대국은 보복관세를 매긴다. 전 세계에 무역 장벽이 세워지며 세계 무역량은 1929년 약 90억달러에서 1933년 약 30억달러로 3분의 1토막이 났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대공황을 심화시켰다”는 해석까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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