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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화면을 한 차례 건들면, 영상 속 인물이 마치 붓으로 그려진 듯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변합니다. 3차원(3D)인 인체가 2차원(2D) 그림으로 변하는 데에는 30초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쉽사리 변환하기 위해, 인공지능(AI) 기술 전문 스타트업인 디오비스튜디오가 지난 5월 출시한 앱 ‘데뷧타이(deVut.ai)’의 기능입니다.
간단한 작업만을 거쳐 회화가 된 얼굴엔 별다른 위화감이 없습니다. 곁들이는 설명이 없다면 실제 화가 손끝에서 비롯한 초상으로 보일 따름입니다. 인간의 형상을 입체적인 3D 컴퓨터 그래픽(CG)으로 모사(模寫)할 땐, 막대한 정성과 자본을 쏟아붓더라도 근원 모를 이질감과 어색함을 지워내기 어려운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죠.
‘불쾌한 골짜기’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완벽하게 닮진 않은 존재를 접할 때 느끼는 혐오와 거부감을 뜻하는데요. 잘 만든 CG에서도 이따금 느껴지는 이물감의 근원은 바로 이것입니다.
키워드 몇 개만 입력하면 생성형 AI가 이미지나 영상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불쾌한 골짜기’만큼은 3D CG 업계에서 여전히 공고한 장벽입니다. 시간과 예산의 한계를 고려하면 작금의 기술 수준으로는 인체를 3D CG로 온전히 그려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완벽을 포기하며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 ‘불쾌한 골짜기’는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명암을 교묘히 조절하거나 빠른 움직임, 어지러운 카메라 워크 등의 기법을 동원해 관객의 감각을 속이는 것도 결국에는 잠깐의 미봉책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만화 캐릭터나 삽화에 가깝게 묘사하면 ‘불쾌한 골짜기’는 발생할 여지가 애초에 없습니다. 고우영 화백의 작품에서 미지의 공포를 느낀다 말하는 이는 없습니다. 그 누구도 허영만 화백의 그림체를 두고 혐오나 섬뜩함을 논하진 않습니다.
CG 장편 애니메이션이 한창 무르익던 21세기 초 워너브러더스가 내놓은 작품 ‘폴라 익스프레스’는 인간을 쏙 빼닮은 3D 그래픽을 추구하다 되레 불쾌감을 유발하는 바람에 아쉬운 흥행 성적표를 받아 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같은 달 개봉한 픽사의 ‘인크레더블’은 캐릭터를 확연히 만화풍으로 그려낸 덕에 찬사를 받은 것은 물론 막대한 수익까지 거머쥐었습니다. 3D로 그래픽을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이야기죠. ‘닮게 하려고’ 애쓰는 대신 ‘작정하고 다르게’ 만들어 버리면 오히려 정답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엔 ‘밀어서 안 되면 당겨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단순히 생각의 방향을 바꿔 보는 것만으로도 봉착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3D에서 비롯한 ‘불쾌한 골짜기’를 피하고자 2D를 향한 데뷧타이 앱처럼, 기술 분야에도 이따금은 사고의 흐름 자체를 뒤집어 보는 과감한 역발상이 필요하진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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